상살미 언덕에 있는 솔안말

 소나무가 많아 솔안말이 아니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좁다'는 의미다.

 

▲ 1919년 일제강점기 때의 지형도(송내촌)

● 솔안말(松內洞)이 있다.

현재 솔안말은 송내1,2동을 가리킨다. 여기에 산골마을, 양안리가 있었지만 이들 이름은 현재 지도에서 사라졌다. 당연히 솔안말도 사라졌다. 송내동은 중동역, 송내역에서 거마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아주 넓은 지역을 포괄한다. 여기에는 부천소사경찰서, 부천공업고등학교, 부천고등학교, 성주초등학교, 부천문화원, 신한일전기, 송일초등학교, 부천여자중학교, 성주중학교, 산골어린이공원, 솔안말어린이공원인 송내어린이공원, 솔안초등학교, 송내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대정 8년(1919년) 3월 25일 인쇄한 군포장 지형도에는 경인철도가 솔안말 아래로 통과하고 있다. 경인국도는 솔안말 위쪽인 거마산쪽으로 지나갔다. 이곳은 해발 20.79m였다. 부천지역에서 제법 높은 지대에 속했다. 현재도 솔안말은 경인철도와 경인국도 사이에 위치해 있다.

한자로 송내촌(松內村)으로 표기되어 있다. ‘솔숲이 가득한 안동네’라고 해야 할까? 정말 이렇게 부르는 게 맞는 걸까? 뒤에서 그 어원에 대한 자세한 풀이를 한다.

부천내 마을들이 대부분 ‘마을 리(里)’로 표기했지만 이곳은 ‘마을 촌(村)’으로 표기했다. 내리인 내촌(內村), 점말인 점촌(粘村), 진말인 진촌(陣村), 솔안말인 송내촌이다.

조선시대 지방제도는 호수에 따라 면리(面里)를 두었다. 경국대전에는 한양을 제외한 각 지방에는 5호(戶)를 1통(統), 5통을 1리(里)로 했다. 몇 개의 리를 모아서 하나의 면(面)으로 한다고 했다. 지방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전통 마을이 존재했다. 그래서 5통을 무조건 1리로 편재(偏在)하는 것이 아니라 리의 내부에 있는 통수(統數)의 다양성을 인정하였다. 작은 소리(小里)엔 5~10통이 포함되고, 중간 크기의 중리(中里)엔 11~20통이 포함되었다. 아주 큰 대리(大里)는 21~30통으로 구성되었다.

솔안말이 속한 돌내의 한자어인 석천면(石川面)에는 사래이인 상리(上里), 장말인 중리(中里), 깊은구지인 심곡리(深谷里), 구지말인 구지리(九芝里)가 포함되었다. 이로 미루어 솔안말은 리(里)의 기준인 25호(戶)에 못 미치는 작은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19년도 지형도에는 12호(戶) 정도가 그려져 있다. 2개 정도의 통(統)이었다. 해방 후를 기준으로 50여 호가 살았다.

그래서 솔안말은 가까이 있는 구지리에 속했다. 솔안말 위쪽에 위치한 산골마을도 8호 정도로 표기되어 있다. 하나의 통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행정표기에는 송내촌, 산골마을인 산곡리(山谷里)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에 반해 구지말인 구지리는 솔안말, 산골마을, 양안마을을 포함해서 면 아래에 있는 리(里)가 된 것이다.

 

▲ 솔안말 마을에 세워진 송내 우성아파트

● 상살미 언덕에 있는 솔안말

송내 340번지(경인로 29번길) 우성송내아파트, 송내 365번지(경인로 53번길) 성우아파트 일대이다. 솔안말 어린이공원, 송내시장, 일대도 포함된다. 아파트안 길은 반듯하지만 다른 마을 길은 구불구불해서 어렵사리 솔안말을 구분해낼 수 있다. 산골마을 하고는 조금 떨어져 있어 어렵게 구분해낼 수 있다. 이곳은 구지말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경인철도와 경인국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거마산 줄기를 타고 서북쪽으로 내려오다가 우뚝 솟아오른 상살미 자락을 품고 있는 아늑한 마을이었다. 상살미는 살미라고도 한다. 한자로 상산(上山)으로 쓴다. 시우물 상살미하고 그 뜻이 같다. 상살미로 쓰나 살미로 쓰나 그 뜻이 똑같다.

살미는 거마산이 서북쪽으로 길게 뻗어내려 오다가 솔안말 서쪽 옆에서 완만하게 봉우리를 지은 산이다. 일제강점기 1919년도 지형도를 보면 살미의 형태가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부평군 석천면 구지리 상산(上山)이라고 했다. 보통 살미는 ᄉᆞᆯ에서 나온 말이다. ᄉᆞᆯ은 생명의 원천이다. 그런데 한자로 이 살을 쌀로 해석해서 미산(米山), 살을 화살로 인식해서 시산(矢山)이나 전산(箭山), 사람이 산다는 의미로 쓴 거산(居山), 다시 사람이 산다는 의미로 쓴 활산(活山)이 있다.

상살미를 해석하면 ‘미’는 산이라는 뜻이다. 부천에 있는 멀미, 소개미, 능미, 할미에서 미도 그 의미가 같다.

솔안말에 있는 상살미는 ‘’이 어원이다. 이 ᄉᆞᆯ에서 물살을 의미하는 살로 파생한 것이다. 서울 성동구 뚝섬에 있는 살곶이가 있다. 한자로는 전관평(箭串坪)이라고 쓴다. 하지만 여기는 중랑천과, 한강의 물살이 가까이 있다. 평안남도에 살개 마을이 있다. 이 살개 마을도 물가에 접해 있는 마을이다. 그러므로 살미는 ‘물가에 접해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윗 상(上)이 있으므로 ‘물가에 접해 있는 윗산’이다. 구지리 앞으로 구지내가 흘렀고, 서해조수가 밀물 때면 구지마을 앞쪽까지 밀려들었으므로 그 물가에 접해있는 산이 바로 상살미였다.

지금의 상살미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송내동으로 주택가들로 가득 메워졌다. 상살미 꼭대기였던 지역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80년대 이후 집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상살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산언덕만은 어쩌지 못해 제법 가파른 언덕을 유지하고 있다.

ᄉᆞᆯ이 어원으로 쓰여진 것들은 사람, 삶, 사랑, 슬기 등의 낱말을 낳았다. 다시 ᄉᆞᆯ은 설, 술, 수리, 수레 등으로 형태를 달리해서 쓰였다. 설에는 설악산, 설성산, 설봉산, 설한령, 설운령, 설마치, 설령, 설암산, 설우산, 설주봉 등이 있다. 술은 술앗, 술골, 술못이 있다. 수리는 수리봉, 수리산, 수리재 등이 있다. 수레는 수레너머, 수레재 등이 있다.

 

▲ 솔안말에 있는 건우 아파트

● 솔안말의 의미

솔안말에서 끝 글자인 말은 마을의 준말이다. 가운데 안은 한자로 안(安)이라고 해서 구르, 기르, 고르의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이는 바다나 하천을 의미하는 순 우리말의 고대 어형이다. 살미의 살하고 그 뜻이 같다.

천소영의 고대언어 어휘 연구에 의하면 하천을 의미하는 고대어에는 가라(加羅)/가야(加耶)/가락(伽落)/거로(巨老)/거야(巨野)/고록(古祿)/고리(古離)/굴(屈)/갈/걸(乬)/걸(沃)/서(西)/안(安,鞍)/마(馬)/해(海)/아오(我烏)/하(河) 등이 있다. 동음(冬音)/동석(冬焟)/도을(道乙)/도리(道利)/독로(瀆盧)/진량(珍良)/월량(月良)/파단(波旦)/파리(波利)/남(南)/여(餘)도(徒)/원(猿)도 있다.

순우리말인 다라/더러/도르/도리/도름/두름/두리/덜/돌 등이 이를 안쪽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안 내(內)’로 옮겼다. 멧마루의 봉안산(鳳鞍山)의 안(鞍)도 바다나 하천을 의미하는 말이다. 장말이나 구지말에서 볼 때 솔안말은 구지내하고 서해조수가 들락거리는 물가에 접해져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그 의미에서 ‘안(安,鞍)’을 썼다.

물론 마을이 ‘안쪽에 있다’는 의미도 있다. 물가에 접해있으면서 안쪽에 위치해 있을 때 주로 썼다.

앞 글자 솔은 ‘솔다’에서 나온 말로 ‘좁다’는 의미이다. 오솔길에서 솔은 좁은 길을 의미한다. 좁다는 의미의 솔이 졸로 바뀌고, 이 졸이 다시 조, 족, 잔, 쪽, 좀 등으로 바뀌었다.

일반적 땅이름에는 순우리말로 쓰여진 솔은 소나무라는뜻 보다는 ‘좁다, 가늘다, 작다’의 뜻으로 많이 쓰였다. 부추인 솔, 여름꽃인 나리의 종류인 솔나리, 솔나물, 솔비나무, 솔새, 솔이끼 등이 있다. 졸로 쓰여진 것은 졸때기, 졸되기, 졸보기, 졸장부, 졸참나무, 졸밥 등이 있다. 땅이름으로는 조리울, 조리텃골, 조랑지 등으로 쓰였다.

조로 쓰인 것은 조라기, 조랑말, 조롱, 조롱박, 조리개 등이 있다. 족은 작은박인 족박, 조끼인 족기 등이 있다. 땅이름으로는 족골, 족다리, 족지골, 족실, 족들, 족바지, 족박골 등이 있다. 잔이 들어간 땅이름은 잔골, 자은, 잔다리, 잔가리 등이 있다. 좀은 조무래기, 조막손이 있다.

이 솔이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으로 바뀌었다. 솔밭은 작은 밭인데 송전(松田)이 되었다. 솔안말에 솔마을이라는 아파트가 있다. 순전히 소나무라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아파트 이름으로 차용한 것이다.

작은 내인 솔내인데 송천(松川)이 되었다. 작은 산이라는 뜻인 솔미, 솔뫼를 송산(松山)으로 쓴다. 작은 고개인 솔고개, 솔재, 솔치가 한자로 바뀌면서 송현(松峴)이 되었다. 이 송현은 부천에서 가까운 인천직할시 동구 송현동(松峴洞)이다. 작은 섬이라는 뜻인 솔섬이 송도(松島)가 되었다. 전국의 여러 솔섬이 있다. 소나무섬은 아니다.

솔안말이 송내촌(松內村)이 된 것은 이 작고 좁다는 의미의 ‘솔다’에서 기인한다. ‘작은 마을이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좁은 상살미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소나무는 고대어에서는 ‘붓, 불, 북’으로 불리웠다. 그리고 부소, 부사로도 쓰였다. 송악(松嶽)을 삼국사기에서는 부아악(扶兒嶽)으로 표현했다. 부아는 불아로 불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불은 곧 소나무 송(松)자를 가리킨다.

그러다가 중세 이후 솔이 소나무로 자리를 잡아 솔로 쓰이게 되었다. 이 소나무의 솔은 수리에서 나온 말이다. 수리가 숄로 바뀌고, 숄이 솔로 바뀌어 ‘으뜸, 우두머리’의 뜻으로 쓰였다. 이것이 소나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송(松)으로 쓰였다. 

 

 

▲ 솔안 어린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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