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근로, 노동자와 근로자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이 종속적 의미의 ‘근로자’대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힌데 이어, 국회에서 아예‘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된다. 노동 존중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권 분위기속에 노동계에서 수십 년간 주장해온 ‘노동자’표현이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한국일보 2017.8.21.).

 

 오늘의 신문 기사를 보면서 이제 한국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말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근로자’라는 말보다는 ‘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노동과 근로,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사회에는 노동이라는 말과 근로라는 말이 혼재되어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노동법이라는 말이나 노동조합, 노동부장관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근로기준법, 근로자, 근로청소년, 근로계약서, 근로복지공단, 근로감독관 등과 같이 근로가 들어간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어째서 노동부장관 아래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노동감독관이 아니라 근로감독관일까? 필자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노동은 □□다’, ‘노동자는 □□다’ 라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개념을 물어보는 시간이 있다. ‘노동은 소중하다’거나 ‘노동자는 우리의 미래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청소년들이 노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답변을 많이 한다.‘노동은 마지못해 한다’, ‘노동은 노가다다’, ‘노동자는 개미다’ 라고 서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노동자는 노예다’라거나 ‘못배운 자다’, ‘거지다’, ‘외국인이다’라는 극단적인 부정의 대답도 있다.

 또 청소년들과 함께 수업방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로 역할을 나누어서 서로 대화를 하면서 근로계약기간이나 임금, 수당, 휴일, 근로조건에 대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시간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하게 자기의 근로조건이나 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을 느껴보고자 하는 수업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대다수의 친구들이 사장의 일방적인 지시에 수동적으로 따르고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미 어린 친구들에게도 사장은 권력자로서 군림하고, 노동자는 주면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한다는 수동적인 모습이 자리한다. 우리사회에서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린 청소년들에게 투영되어 나타난 모습일 것이다.

 

 필자는 청소년들에게 되묻는다. 도대체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청소년들은 근로자는 사무직이고, 노동자는 현장직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근로자(勤勞者)라는 말의 한자적 의미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고, 노동자(勞動者)는 움직여 일하는 사람’이다. 왜 근로자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인가? 노동자는 어째서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자가 되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부지런할 근(勤)자를 붙여주면 좋을까? 대통령은 勤대통령, 사장님은 勤사장님, 선생님은 勤선생님 이렇게 부르면 어울릴까? 우리 사회에서 근로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근로정신대’등에서 시작되고 있고,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5.1)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면서 ‘노동’보다 ‘근로’라는 표현을 강조해왔다. 어찌 보면 식민시대의 잔재이고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동에 대한 적확(的確)하고 긍정적인 인식이 주어져야 한다. 노동이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그런 활동이 아니고,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토대이며, 인간 활동의 최고행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은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 감정적인 활동, 예술 문화적인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현대자동차의 30년간 일한 현장 조립노동자들이 연봉 1억을 받는 것은 귀족노동이고, 금융권이나 방송사 기자들이 1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대학교에서 청소하는 노동자가 대학교 직원이나 교수와 비슷한 임금을 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질까?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자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두 배, 세 배, 심지어 수십 배의 임금이 차이가 나야하고, 사무직은 시키는 자가되고 현장직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할까? 인간 노동의 가치가 사무직과 현장직이 다르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다른 것인가?

 

 일하는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야 하며, 모든 노동자는 사회의 생산력이 허용하는 최대의 임금과 생산물을 분배받아야 한다. 어떠한 노동의 가치도 소중하다. 사회적 활동에는 자신의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이 노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철학자 까뮈는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 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고 했다.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노동의 의미와 노동이 그저 수동적인 ‘근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제대로 말한 것 이라고 본다.

 

 ‘근로’ 대신 ‘노동’을, ‘근로자’대신 ‘노동자’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환영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의 노동에 대한 인식과 국회의원들이 발의하는 노동에 대한 사고의 변환은 분명 우리사회를 더 긍정적이고 노동존중의 사회로 만들 것이라고 본다. 우리사회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참여하는 시스템, 노동자 대중이 주체로 참여하고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시스템, 이런 사회가 현대 민주주의가 아닐까? 그 첫걸음은 노동이 제자리를 찾고,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자 가족이 행복한 세상이다.

 

글 | 이종명(부천시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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