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다 죽는 세상

 

서창미 공인노무사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상담실장

 

얼마 전 또 한 명의 우체국 집배원 분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가슴 아픈 유서를 남기신 채 말입니다. 우체국 집배원 분들의 사망 사건은 올해만 13건이 발생했고, 그 중 자살은 6건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체국 집배원 분들의 사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5년 동안 70여명이 사망했고, 사망 사유는 주로 과로사의 원인으로 알려진 뇌혈관질환인 심근경색, 뇌출혈, 그리고 교통사고 등입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와중에 우체국에서는 정작 ‘무사고 1000일 달성’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고 하네요. 무사고 달성을 위해 아파도 일을 했을, 괴로워도 참아냈을 집배원 분들을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과로사 또는 과로자살은 직종에 관계없이 우리의 일터 어디에서나 일어납니다. 최근에는 어느 게임회사에서 작년과 올해 사이 3~4명의 직원이 과로사로 죽거나 자살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게임회사에는 ‘크런치 모드’라고 하여 게임 출시와 업데이트를 앞두고 숙식 등을 모두 회사에서 해결하는 초장시간 노동을 관행적으로 해왔다고 합니다. 이 회사를 퇴직한 한 직원은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사무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매일같이 한탄했다고 하는데요. 근로복지공단은 이 회사 크런치 모드에서 일하다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산업재해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고인은 사망하기 전까지 주당 평균 89시간을 일했고, 많게는 주당 95시간까지 일했다고 합니다. 법정 근로시간이 1주 40시간임을 떠올려 볼 때, ‘크런치 모드’는 그야말로 ‘살인 모드’가 아니였을까 짐작해봅니다.

 

우리나라가 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것은 굳이 여러 통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오래 일을 하는 국가라는 불명예를 언제쯤이면 떨쳐낼 수 있을까요? 장시간 노동은 과로사나 과로 자살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얽혀져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이 근절되어야 하고, 졸음 운전으로 인해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켰던 것도 버스 기사분들의 장시간 노동이 문제였습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인 것처럼, 장시간 노동도 사회 여러 문제들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의 문제가 해결되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렇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열심히 일하다 아파서, 괴로워서 죽는 세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우리와 같이 과로사와 과로 자살이 늘면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4년엔 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되기도 했는데요. 법 하나 만든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점점 일터에서의 문화까지 바뀔 수 있다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다 죽는 세상이 아니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도 더욱 더 함께 외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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