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추상적이며 가치나 윤리와 밀접한 신뢰는 믿음을 그 근간으로 하는 관계의 철학에 기반 한다.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상을 가늠하게 하는 방향을 말해줄 수 있을 듯하다. 선거를 승리로 마친 당선자들이 그 통과의례로 치르는 취임식을 태풍이라는 자연현상으로 취소하고 대비에 만전을 기한다는 이유로 의미를 대신했다.

통과의례는 단계마다 의미의 상징성을 지니는 의식이고 시작의 선포이며 공개적인 확인과정을 거친다. 앞으로의 4년간을 시작하는 공인된 공직자로서의 인정과 업무의 공개적인 시작을 선포하며 승인하는 과정을 생략한 결정은 가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460일 가운데 그 하루의 의미는 신호탄이며 종착점을 의식한 과정의 함축적인 측면에서 의미는 무겁다기보다 상징에 대한 의미가 깊다고 보여 진다.

신뢰가 믿음을 주어야 하는 측은 당선자이고 의지하는 측은 유권자인 시민이고 지지자일 것이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고 의지일까는 너무도 확실하다. 당선자들이 스스로 내세운 공약(公約)이다. 공약은 공법상의 계약이며, 정부나 정당, 입후보자가 시정운영에 대하여 유권자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행위이고 언약이고 선언이다.

공약은 당선자가 스스로 결정한 양심을 담보한 의무이고 유권자를 향한 반드시 지켜야할 신성한 책임이다. 때문에 공약은 공약(恐約)이다. 그 결과가 의심스럽고 공허로 맺음한다면 위선자가 되고 거짓말쟁이로 낙인을 받는다. 자기 양심에 대한 낙인보다 두려운 유권자인 시민을 향한 약속의 파기는 속죄의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 신뢰가 무겁고 두렵고 어렵고 힘겨운 이유이다.

공자(孔子)는 신뢰를 그 시절에 국민의 안전인 국방보다 우선에 두었고, 심지어 국민의 생존과 밀접한 경제보다도 앞선다고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신뢰가 인간관계의 근간이고 원칙은 아니었을까. 신뢰가 무너진 불신의 사회를 감히 상상해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하여 정치는 말로 하는 행위이라지만 그 말조차 지킬 수 없는 정치인은 자격을 스스로 박탈해야 할 일이다.

항구는 시작과 끝의 상징으로서 구체적인 실체를 보여주는 장소성이 강하다. 출항의 이유와 가야할 지도와 준비를 끝낸 배가 4년간의 항해를 위해 이제 닻을 올린다. 파도와 바람에 대한 대비보다는 그에 대항할 선원들과의 신뢰가 없다면 파선보다 무서운 어둠이 계속되고 항해는 의미를 잃고, 시민의 기대는 싸늘하게 등을 돌릴 수밖에 도리가 없다.

정치력은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발휘하는 것이다. 행동으로 움직여 실현하고 실천하여 결과로 보여주어야 하는 의지이고 힘이며 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공약은 자신에 대한 의지의 무거운 시험대이며 유권자를 향한 관계의 두려운 맹세이다. 강고한 철학이 굳건해야하는 이유이다.

이제 태풍과 폭우로 시작한 항구를 떠난 배가 약속대로 만선의 기쁨을 안고 웃음으로 귀항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 항해의 안전을 도모하고 기원하는 시민으로서 후보자의 공약을 지켜보고 후원하며 함께 동반자로서의 해야 할 시민 책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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