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립니다’는 어원은 ‘누리다’가 원형이다. ‘누리다’는  (사람이나 기업이 무엇을) 마음껏 즐기거나 맛본다는 의미가 있다. 부천시는 자칭 ‘문화특별시’라고 시에서 주체가 되어 넓게 오랫동안 홍보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어 부천시 시정 슬로건을 ‘새로운 부천, 시민이 누립니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슬로건은 정당이나 어떤 단체의 주의나 주장 등을 간결한 말로 나타낸 것을 일컫는다. 부천시도 넓게 보면 (특수)단체일 수는 있으나, 정당은 아니다. 더욱이 부천시가 그 내용인 주의나 주장 등을 정해서 부천시 전 지역이나 각종 홍보물에 알려야 한다는 건 다시 한 번 숙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공모 형식이란 형태를 취해 시민이 제안했고, 또 공모에 대한 심의 과정도 거쳤을 것이다.

새로운 부천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본인의 슬로건을 ‘내 곁의 부천시장’이라고 선거 당시 홍보했으며, 당선 후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 게시하고 있다. 물론 내(나)는 부천시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 곁의 시장은 매우 친근하고 가까이 있다는 의미다. 더 깊은 뜻은 시민으로서 무엇이나 이야기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어 소통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새로운 부천시의회 의장도 의정목표를 ‘행복은 특별하게, 민생은 확실하게, 공감은 따뜻하게’로 정하고 ‘현장 중심의 소통’을 큰 원칙으로 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전제조건에 기인한다. 시민의 존재는 늘 현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과 의장은 시민을 위한 시민 곁의 지킴이이거나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의 가교자 역할의 주체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부천, 시민이 누립니다.’에는 부천시가 시민을 향해, 부천시가 해주는 대로 시민은 누리기만 하라는 것, 그 정책이,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이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시정(행정과 정책)을 누리라는 것인가. 급하게 말하면 시가 해주는 정책과 행정대로 받아먹고 누리기나 하는 수동적이고 피동적 객체가 되라는 것일 터인데,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심히 씁쓸하고 서글퍼지는 건 왜일까.

더구나, 이 슬로건은 부천시청 홍보과 직원의 발상이다. 슬로건에 공모한 당사자인 본인은 부천시민인지 우선 궁금하다. 진정 시민의 입장과 수준에서 상황을 깊이 파악하고 시민의 삶에 동참하고 실제로 시민 속에서 겪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정서의 대변인지도 자못 궁금하다.

만약, 부천시에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부천시 이외의 거주 시민이라면, 아울러 공직자로서의  행정 편의에서의 입장과 시각에서 부천시가 베푸는(?) 혜택이나 누리라는 험악한 일방적 행정과 탁상 정책의 발로라면 고약한 냄새가 가득하지 않은가.

이런 상상은 나만의 불편하고 왜곡된 해석이고 느낌이기를 희망한다. 더구나 응모자의 ‘의매’ 해설에서 부천시가 그려나가는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부천시(?)의 아름다운 그림을 위해 시민은 시가 해주는 정책과 행정을 누리기나 하면 되는 수동적 입장에 서라는 것 같아 불편한 것 역시 나만의 오해이기를 희망하면서도 왠지 석연치 않은 이유는 왜일까.

‘내 곁의 시장’과 ‘새로운 부천’의 만남으로 도시의 존재이유인 사람(사람과 시민의 차원에서 아마 시민의 자격을 일컫는 것이라고 믿지만)이, 시민으로서의 주체적인 위상을 마련해주어야 할 공직자의 의무와 역할을 다시금 찬찬히 생각해보면 불편함이 그득하다. ‘새로운 부천, 시민이 누립니다.’가 부천시의 문패로서 언뜻 가슴에 와 닫고 편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늘 발전은 개선 속에서 익어가는 과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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