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일은 어김이 없고, 가고 오는 계절은 순환의 원리에 의해 끊임이 없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이법에 따라 삶을 영위하면서 순응과 적응을 깨우치고 터득하여 문화를 이루어 왔다.

소한(小寒)이다. ‘대한(大寒)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가장 추운 절기다. 양력으로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소한이 사실상 첫 절기이지만, 24절기 가운데는 23번째가 된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대한까지 15일 간을 3등분하여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中候)에는 까치가 집을 짓고, 말후(末候)에는 꿩이 운다는 옛말이 전해온다. 천리(天理)인 것이다.

하늘의 이법인 천리를 넓히면 천륜(天倫)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을 듯도 하다. 하늘의 윤리는 인간의 윤리를 초월해 있어 높고 멀다.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지고지순하기까지 한 이유가 된다.

새해를 추위보다 더 엄혹한 뉴스로 시작한 안타까움에 필자에겐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무겁고 어둡다. ‘효도계약서’란 낯설지만 존재하는 문서상의 약속이다. 재산의 증여가 조건이 되고 담보가 되어 약속을 어기면 파기할 수 있다는 계약인 것이다. 천륜 간의 인연이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법적 계약서가 된 것이다.

더구나 그 계약의 조건이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증여된 재산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법적 소송의 절차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이미 천륜이라 할 수 있는 인간적 범주를 넘어서 사회적이고 법적인 매정하기 이를 데 없는 계약인 것이다.

계약의 의미는 ‘일정한 법률적 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의사 표시의 합의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지는 법률 행위’라고 풀이되어 있다. 슬픈 일이라기보다 아픈 현실이다. 황당하고 참혹하지만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적 고전인 [삼국유사(三國遺事)] 제9 효선(孝善)에는 다섯 사례의 효행이 교훈으로 전해온다. 그 세 번째 이야기는 이렇다. 옹천주(지금의 충남 공주)에 향득이라는 사지(舍知:신라시대 관등)가 살았는데, 흉년으로 아버지가 굶어 죽게 되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봉양했다는 이야기다. 이름 하여 향득사지할고공친(向得舍知割股供親)이다. 세간에는 할고봉군(割股奉君)으로 변형되어 회자되기도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로 오랜 시간동안 전해오는 우리의 천륜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합의에 의한 법률적 행위를 근간으로 재산을 증여한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까. 계절이 오고 가고 살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사가 하늘의 이법이라면 과연 인간의 논리로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고, 사실이고 사건으로 뉴스가 되었음을 본다.

‘소한이 대한의 집에 몸 녹이러 간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엄혹한 추위가 와도 하늘은 인간을 위해 견딜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은혜를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베푼다. 자식이 부모 품에서 오래도록 머물 때, 더불어 부모가 자식을 위해 마음을 쏟을 때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증거가 있다. 계약이 아닌 천륜이고 자연의 이법이라는 실례(實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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