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사람들 이야기 #03

원미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뒤에 동네 여기 저기 어디에서나 낯선 사람 한 명을 보았다. 어느 장소에서나 어디에서나 있는 그 분은 꽃 위에 얌전히 올라 앉아 있는 흰나비 같았다.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 있다. 고요하게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면서 소리 없이 있는 나비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무심하게 곁눈질만 할뿐 말 걸기를 꺼려 하고 있었다.
  
그와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뒤 원미동에 있는 별빛공원 원미마을문화축제에서다. 행사에 참여한 조규석 부이사장님이 지역주민 혈압혈당을 체크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부이사장님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나 건강한지 한 번 봅시다.”
    혈압, 혈당을 재어 보니 수치가 안정적이었다. 꽤 건강하다고 칭찬을 해주니 좋아했다. 그리고는 자기 지갑 속에 있는 사진들을 꺼내어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도 있었고, 원미마을문화축제를 주최하는 분들의 사진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팜플릿에서 오려 넣은 것이다. 원미동에서 자주 보는 분들이 반갑고 좋아서 지갑 속에 간직한 것 같았다. 이름도 알게 됐다. 68년생 정봉희님.

 

   
그렇게 얼굴을 튼 이후 더 마주칠 떄 마다 눈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만나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 뒤로 사무실에도 놀러 오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회에서 가지고 온 팔찌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내 물통에 물이 비어 있으면 정수기에 가서 물을 담아 주었다. 일이 바쁠 때면 복사기에 있는 복사물을 가져다가 자리에 전해 주었다. 쓰레기통이 가득차면 쓰레기를 비워 주고 새비닐로 갈아 씌어. 주기도 한다. 파쇄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동네에서 나누어 주는 EM을 가져다가 빨래 할 때 쓰라고 선물로 주었다.
    
출근길마다 만나는 정봉희님. 한 번은 생선가게 앞에서, 또 한 번은 과일가게, 야채가게 앞에서 서 있다. 가끔 가게 일을 거들어 주기도 하고 아침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요즘은 추워서 그런지 원미동 골목 과일가게 한 곳에 있는 난로 앞에 불을 쬐며 아침을 보낸다. 사장님은 그 앞에서 열심히 아침 장사를 준비하신다. 사장님에게 봉희님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제 친구다.
     
봉희님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따스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민센터에 자주 찾아가서 앞마당을 쓸어주곤 했다고 한다. 나의 상상은 조금 더 발전하게 된다. 봉희님이 적더라도 급여를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더 좋을텐데. 놀러울 때 마다 심심하다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  좀 더 큰 꿈을 꾸어 본다. 봉희님에게도 직장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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