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을 하면서 지내는 날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부천 시내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아졌다.
천안 용머리 논으로 삽질 하러 가는 날은 또 천안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특히 그 더운 여름날, 논일을 마치고 시원한 천안행 버스에 오르면 더없이 행복해지곤 한다. 논둑에서 쩐 땀도 이내 들어가고 마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뿐이 아니다. 시골버스도 자신의 위치정보를 쏴 올리고 나는 정류장에서 이 운행정보를 받아 본다. 그러니 용머리에서도 버스앱만 열면 내가 탈 버스가 지금 어디 쯤 오는 지를 알 수 있어 답답하지를 않다. 평소 이런저런 근대성에 반감이 많지만 버스앱 땜에 문득문득 문명 찬양론자가 되곤 한다. 이참저참 버스는 편리하고 한 달이면 카드로 결제되는 버스요금이 5만원을 넘길 만큼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버스를 탈 때마다 마땅치 않은 구석이 많다. 버스가 너무 심하게 서두르거나 빨리 달려서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노선이 다르고 운전기사가 달라도 부천이나 천안이나 하나 같이 그러하니 안타깝다.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의 대부분은 연로자들이 아닌가. 차를 살 돈이 있다 해도 운전할 엄두를 못 내서 버스를 타는 것도 억울할텐데. 세상 이치는 고약해지고 이웃의 카풀 호의를 주고 받기도 어려운 시절이다. 몸이 불편할 뿐 아니라
 버스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어 하고 손에는 보따리 짐까지 들고 있어 그 걸 앞세우고 거의 기어오르다시피 하는 허리 굽은 노인들도 적지 않다. 그나마 논에 갈 때마다 이용하곤 하는 6
백번대 천안시내버스는 저상버스라고는 한 대도 볼 수가 없다.

몸놀림이 좋든 나쁘든 버스에 오르자마자 한 손은 기둥을 잡느라 손을 빼앗겨야 하고, 자리로 가기 전에 호주머니를 뒤져 카드를 꺼내서 찍어야 한다. 준비없이 현금을 낼 때는 잔돈도 챙겨야 한다. 버스는 웽 하고 이미 달리고 있는데. 하차출구 위에 보면 영락없이 안내표찰이 붙어 있고 차가 정차할 때까지는 자리에 앉아 계실 것을 권유하고 있다. 서 계실 때는 손잡이를 꼬옥 잡고 계시라는 멘트가 정차안내방송에 따라 붙기도 한다.
버스가 난폭하게 달리고, 앉아서도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내 손에 힘이 들어 가는 걸 느낄 때는 부화가 치민다. 안내표찰이나 안내멘트는 마치 책임면피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천안 시내버스에는 이런 노약자의 승하차를 돕기 위해 도우미 한 분이 동승해 가기도 한다. 아마 그 임금을 공적 재정으로 충당하지 않을까 싶다.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보나마나 민선단체장의 과잉 표의식에서 나온 걸테니 씁쓸하기도 하다.
물론 승객 안전의 핵심은 천천히 서고 천천히 가고 천천히 달리는데에 있지 않을까? 그러함에도 정차할 때는 급브레이크를 밟느라 끼익 소리를 동반하기 일쑤다.
주행시간을 줄이는 것만 유일한 목표인 듯 어느 버스는 차가 채 서기도 전에 끼익 소리와 동시에 자동 하차문이 드르륵 열린다. 운전기사의 위험한 운전습관 때문일 것. 아니면 심각한 안전 불감증의 결과일 것이다.
성질 급한 승객이 문이 열렸다고 계단을 내려 서기라도 하면 버스는 채 서지 않았고 문은 열렸고 승객은 발을 내디뎠을지도 모른다. 그냥 한 사람의 습관으로 치부하고 말 일은 아닌 것이 생명이 걸렸으니 아찔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버스가 안전만 고려하다가는 회사도 종사자도 경쟁에서 지고, 망하고, 실직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간단하지 않은 생각 거리이긴 하다.
속성이 달라서이긴 하겠지만 전철은 웬만하면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될만큼 출발 정지 주행이 고른 편이다. 냉난방도 좋다. 버스와 전철은 보완관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환승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버스와 전철은 경쟁관계이지 않을까 싶다. 버스가 싫으면 전철을 탈 것이고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너무 길어 결론을 낸다면.
이제는 시내버스가 빠름보다는 느림을, 속도보다는 안전을, 교통강자보다는 교통약자를 주된 가치로 삼는 서비스로 전환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버스를 타면서 행복을 누리는 한 노인으로 살길 희망해 본다. 백세 노인도 성심으로 실어 나르는 시내버스. 시내버스 정치와 시내버스 행정 그리고 시내버스 소비도 이런 사회적 미학에 기준을 두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잘 짜여진 우리 시내버스서비스가 느림과 안전을 장착하고 교통약자들의 사랑을 이어 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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