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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듣는 어른들의 잔소리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기사승인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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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꽃들이 한껏 핀 봄의 숲에서는 아이들이 꽃을 만지기도 하고 따먹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타거나 꽃을 따거나 나뭇잎을 만지는 등의 모습을 보며 지나가던 어른들의 반응이 다양합니다. 그 중 봄에는 꽃에 대한 반응이 가장 많이 듣게 됩니다.

   
 

어른1 : 애들아, 꽃 따면 안 돼.

어른2 : 야! 꽃 따면 안 되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따면 되겠어!

어른3 : 꽃 꺾으면 안 된다. 너희가 꺾으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가 없잖니. 어허! 안 된데도.

어른4 : 야야야. 안 돼! 하지 마!

어른5 : 햐~ 너희들 꽃 먹는구나? 맛있어? 어휴 귀엽다.

어른6 : 꽃(열매) 먹을 수 있는 거니? 괜찮아?

   
 

도시에 있는 숲에는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고령화로 인해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습니다. 봄에는 꽃구경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평상시 보다 더 많아  집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늘 다니며 놀던 숲길에서 똑같이 놀아도 늘어난 어른들로 인해 말씀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아 신경이 쓰입니다. 아이들이 평상 시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를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말로 잘 표현은 못하지만 몸으로는 억압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공기가 풍족할 때는 소중한지 몰랐다가 공기가 부족해지면 너무 소중해 지는 것입니다. 자유를 억압당하며 자유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연에 들어서면 호기심이 많아집니다.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릴수록 만지는 것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기 때문이죠. 나무를 꺾기도 하고 꽃을 따서 만져보고 먹어보기도 합니다. 흙을 들어 뿌리기도 하고 비비기도 합니다. 물에 손을 넣기도 하고 따라보기도 합니다.

   
 

도시화와 사회화된 어른들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은 예의 없고, 절제력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생각 없는 아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른은 자유를 침해하고, 표현을 억압하고, 이해되는 설명도 없이 그냥 방해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아이들의 생각은 보이지 않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못하면 서로 이해할 수 없어 좋은 관계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보통 어르신들은 기존의 생각과 습관을 가지고 계시고, 그 생각과 습관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른들의 생각과 지식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도 있지만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것도 있습니다. 가장 객관적이라는 과학조차도 지금까지 모든 것을 밝혀낸 것은 아닙니다. 계속 밝혀 나가는 변화의 과정이지요. 사회가 발전하면서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객관적인 것이 비사회적인 것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어른도 사회의 발전에 발맞추어 변화하지 않으면 비과학적이고, 비사회적이고, 주관적인 사고로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키워내고 이끌어야할 어른들의 지식과 경험의 방향이 잘못되면 다음세대는 방향을 바로잡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숲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는 바른 방향인가 고민합니다. "'자연보호'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림보호'를 위한 것일까?"란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계절 중 가장 사람이 많이 찾는 봄이 되면 어른들이 숲에 가득합니다. 숲을 찾은 어른들의 자연보호는 진정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보호라기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예의를 위한 것입니

다. 아이들은 도시에 살며 관계에 의한 예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아파트 등 건물을

짓기 위해 깎이는 산과 옮겨 심는 비용이 비싸 버려지는 나무들, 도시 환경 정비를 위해 뽑히

   
 

고 새로 심기는 길가의 꽃 등등 아이 삶 속의 식물들은 보호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뽑혀나가도 말이 없던 어른들이 작은 나무 가지와 꽃에 잔소리를 한다면 아이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주변을 유심히 바라본 어른이라면 숲에서 아이들의 행동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사람에 의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숲에 온 사람들은 마치 미술관에 온 사람들 같습니다. “작품을 만지면 안 된다.”는 사회적 약속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약속을 지킴으로 사회 안의 지위를 지킵니다. 지위를 지키는 노력에 아이들도 동참시킵니다. 우는 아이의 요구는 묵살되고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해야만 하는 사회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어른들은 사회적 약속을 숲에서도 지키려 합니다.

   
 

사회적 약속은 사회에 속해있을 때에 유효합니다. 자연은 사회를 포함한 거대한 범위입니다. 자연의 범위를 사회가 넘어설 수 없습니다. 미세먼지, 황사, 온도상승에 의한 강추위, 폭설, 태풍 등 사회가 만들어 놓은 많은 환경문제들도 자연은 시간을 들여 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사회의 문제도 언젠가 스스로 해결할 것입니다. 더 큰 범위인 자연의 삶을 알기 위해 우리는 숲에 가야하고 숲에서 배워야 합니다. 자연은 아이들을 품어줄 커다란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싱그러운 5월에 숲에 가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인 숲에서 자연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마음껏 놀아 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 부천방과후숲학교 http://cafe.naver.com/bcforestschool
* 매월 숲교육 강의를 진행합니다.

정문기 조합원(부천방과후숲학교 대장) bd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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