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원미동 할머니

원미동사람들 이야기 #15

작년 한 해 동안 원미동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다. 원미동 청춘싸롱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어르신 건강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면서 부터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건강카페 꿈땀에 와서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건강공부를 했다.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서 한동안 쉬었는데, 어르신들을 만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여 유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유월에 다시 만난 지선매 어르신이 나를 조용히 찾으셨다. 색연필과 종이를 얻을 수 없냐고 하셨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꼭 필요하다고 부탁을 하신다. 지난 프로그램에 쓰고 남은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찾아 드렸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오셨다. 스케치북을 손녀에게 주었고 더 많은 종이가 필요하다며 그동안 그린 그림을 보여주셨다.

 

  3년 전 교회에서 한글 공부를 하며 얻은 교과서 한 권 전체를 그대로 재현하여 그려 두셨다. 그때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쓰셨다. 46년 동안 원미동 살면서 일을 쉬지 않았다. 70이 되어서야 이제 자기 시간이 생겼다. 교회에서 받은 책, 노트, 색연필, 연필, 지우개가 계기가 되어 한 권을 모두 따라 그린 힘. 그떄 부터 마음속에 그림을 새기셨다.
 
 그 뒤로 좋은 장면을 보고 예쁜 것을 보면 그림을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어릴떄도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열정적으로 집중했다. 바닷가에 살면서 피난 온 옆집 아주머니랑 소라, 게를 잡으러 다니느라 학교도 그만 두었다. 어머니가 못 배운 것이 한이라고 학교를 보내주었는데, 바닷가 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화가 난 어머니가  아궁이에 책가방을 태워 버린다고 해도 꿈쩍 하지 않았고 그만 두었다.

 

 어머니랑 전화통화를 하면  “그림 그리고 있었다. 가지, 고추를 그리는 중 이었어” 라고 말하시고, 꿈땀에서 만나면 “그림 그리다 왔다”라고 하신다. 하루 종일 그림 그릴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리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다. 종이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종이 한 권 묶어 드렸다. 그 다음 날에 다시 찾아 오셔서 종이가 묶여 있으니 그림 그리기 불편하다고 하셔서 다시 풀어 드렸다. 다 그리고 나면 종이를 또 드리기로 했다.
 
 지선매 어르신의 소망은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그 자체가 행복하다.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완성하는 그 과정이 주는 행복감. 어르신들이 종종 말씀 하신다. “즐겁게 살아야 한다.” 지선매 어르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응원한다. 어르신의 좋은 이웃이 되어 종이와 미술도구를 나누고 싶고, 그림을 같이 그리고 싶다. 즐거움을 나누는 이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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