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부모님을 떠나 자취를 했을 때
우리 모두에겐 시기는 다 다르지만 자립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선택들을 했던 순간이 있다. 처음 좋아하는 옷 취향이 생겼을 때 엄마가 입혀주는 옷 대신 내가 정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기도 하고, 부모님이 집에 모두 안 계셔서 혼자 끼니를 때우기 위해 처음으로 라면을 끓였던 때도 있었다.

더 자라서는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겨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더 나아가서 고등학생 때 유학을 결정한 것도 부모님이 아닌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부모님 없이도 혼자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학 기숙사 생활은 다 외우기도 어려운 규칙들과 쌓이는 과제들 사이에서 허우적대느라 하고 싶은 공부 보다는 그날그날 급한 것부터 처리하느라 바빴고, 여유로운 생활보다는 정돈되지 않은 어지러운 책상처럼 난잡하기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마찬 가지었다. 나는 자취를 했는데 해야 할 집안일이 그렇게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집안일을 하느라 저녁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제야 어렸을 때 왜 엄마가 걸레 빠는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셨는지 이해가 됐다. 자취를 하면서 엄마 아빠가 알려준 생활기술들을 떠올리며 해보게 됐다. 생활기술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었다. 된장찌개 만드는 방법, 밥 짓는 방법, 빨래, 청소하는 방법, 공과금 꼬박꼬박 챙겨서 내기 등등 일상 속에서 잘 티는 안 나지만 꼭 필요한 활동들이었다.

내가 산학교에 왔을 때 1학년 아이들이 걸레질을 하고, 밥 짓는 모습에 깜짝 놀랐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생활기술을 익히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나르고, 청소를 하면서 아직도 내게 부족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한다.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산학교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해나가며 연습하고 있다.

산학교에는 생활자립수업이 있다.
 산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아이들은 청소, 식사 준비, 자기 식판과 수저 설거지하기, 요리(반찬, 간식, 절기음식, 김장), 텃밭 가꾸기, 동아리, 하루열기/닫기를 한다. 이렇게 꾸준히 9학년이 될 때까지 역할을 맡아 친구들과 교사들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이 활동들을 주제학습 수업 시간을 활용해서 하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 틈틈이 하기도 한다.

‘생활’을 국어사전에 찾아봤을 때, 1. 생명이 있는 동안 살아서 경험하고 활동함 2. 생계를 꾸리어 살아 나감 3. 조직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함이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거창한 뜻이 한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런데 더 거창해 보이는 ‘자립’이란 말도 뜻이 만만치 않게 거창하다. ‘남에게 의지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섬’이라는 뜻이 있다.

정리해보면 ‘생활자립’이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어 살아나가기도 하고, 조직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생활 자립이 청소와 요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또 나무동구반이 주제학습으로 하는 목공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기본 생활 습관을 익혀나간다._습관과 성취감
 생활자립수업의 첫 째 목표는 ‘기본 생활 습관을 익혀나간다.’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이 점점 바빠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들이 이제는 전문 기관에 가서 배워야 하니 하교 후 아이들의 스케줄이 점점 빽빽해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아이들이랑 몸놀이 시간에 배드민턴을 치는데, 나한테 와서 배드민턴 학원 언제 다녔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안 배웠다고 말하니 아이들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려면 학교나 학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바빠지면서 집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부모님이 대신 해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에겐 지식과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자립에 필요한 생활능력을 습득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자립의 경험은 줄고, 지식을 익히는 시간이 늘어나 자립능력과 지식의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운 마음이다.
 
<우리 아이 작은 습관>이란 책을 쓴 이범용씨는 실제로 아이와 함께 습관을 정하고 2년이 넘게 그 습관들을 실천해 오고 있다. 이불 정리하기, 가지고 놀던 장난감 정리하기, 숙제하기 등이다. 저자는 “매일 자신이 약속한 일을 완수했다는 성취감을 경험하며 자기 신뢰를 쌓아가고 있으며, 자기 스스로 습관을 계획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습관 결과를 기록하는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무동구반은 학교에서 꾸준히 하는 생활교육을 넘어 집에서도 생활을 정돈하면 좋겠는 마음에 ‘이불 정리하기’를 3월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불정리를 한 친구는 달력에 자기 이름의 한 글자를 쓴다. 여름에는 얇은 이불을 덮거나 이불을 잘 덮고 자지 않아서 달력에 적힌 이름이 많지 않다. 그래도 10명중에 7~8명은 매일매일 이불을 정리한다. 달력에 이름을 적으며 아이들은 엄청 뿌듯해 한다. 이불 정리하는 작은 행동이지만 꾸준히 쌓이면서 아이 스스로 얻는 성취감이 실제로 있다. 일상은 내가 지내는 모든 날인데, 이 하루하루 속에서 작은 성취감을 계속 얻어나간다면 분명 아이들의 삶에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바빠질 거고 바쁘다 보면 자연스레 급하지 않은 것들은 생략되어진다. 생활을 꾸리고 가꾸는 일은 사실 급하진 않아 그때그때 생략되어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활을 챙기는 것은 급하진 않지만 아이들 생활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꾸준히 쌓아가는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집은 이불정리일 수 있고, 어떤 집은 잠자기 전 책 읽기 일 수도 있겠다. 너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해나가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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