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유사과학 탐구영역  계란계란 지음 / 출판사: 뿌리와 이파리

 

 

급하게 쫓기듯 밀려나는 가을이 아쉬운 맘에 무언가를 툭 던져 놓고 지나갑니다. 이거 뭐지 하고 살펴보니 ‘입동’이군요, 이렇게 가을이 남기곤 간 자리에서 겨울을 만납니다. 입동을 얼마 지나진 않아 만나는 첫 추위는 언제나 ‘수능 추위’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추위’가 있다는 소식이 있어요. ‘대학수학능력평가’ 자체가 이미 수험생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온 나라가 초긴장하는 날인데 설상가상으로 기온도 뚝 떨어지니 이처럼 고약한 날도 없다 싶습니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만화책을 둘러보니 근래 구입한 만화들이 자기 먼저 읽어 달라는 눈짓을 보냅니다. 그런데 서가 끝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서 마치 ‘수능 추위’에 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숨죽이고 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출판사도 낯설고 저자는 더욱더 낯선 <유사과학 탐구영역>이라는 만화입니다. 이 녀석을 언제 구입했지? 하고 살펴보니 작년 여름쯤 신간으로 들어온 녀석이더군요. 수능 즈음에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혹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니 2020년 수능 시간표에 따르면 과학탐구는 4교시인 오후 2:50부터 102분 동안 진행됩니다. 몇 년 전까지 과학탐구영역 강사(물리1,2)였던 광장지기는 매년 수능 저녁이면 과학탐구 문제를 풀어 보면서 문제 유형이나 난이도를 체크해 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올해는 과탐 수능문제 대신 <유사과학 탐구영역>을 봅니다.

  <유사과학 탐구영역> 이 책 완전 물건입니다. 일단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재밌습니다. 다만 수능을 떠올리게 하는 책 제목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조건 읽어야 합니다. 특히 책상 위에 미세 먼지를 흡수하는 식물을 올려놓고 계신 분들, 핸드폰에 전자파 차단 스티커를 붙인 분들, 몸의 산성화를 방지하고자 애쓰는 분들, 저지방 우유를 마시는 분들, 자석 목걸이/팔찌를 차고 다니는 분들, 베이킹 소다, 전자 레인지, 글루테 등등 일상의 과학상식이 풍부하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물리 강사를 하면서 나름 과학도답게 이성적인 체 했는데 <유사과학 탐구영역>을 보면서 일상에서는 참 그냥 들려주고 보여주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확인되지 않은 말 몇 마디와 함께 ‘이건 몸에 좋아/나빠’하면 합리적 의심이나 판단이 중지되는 경향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물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잖은 분들이 광장지기와 비슷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유사과학 탐구영역>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유익이라면 천연물질/화학물질, 자연/인공 등을 서로 대척점에 두고 좋은 것/ 나쁜 것으로 구별했던 지점에서 ‘진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연이라고 다 이로운 것은 아니고 화학물질이라고 다 해로운 것도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거기에 언론과 자본이 결합한 마케팅을 통해 모종의 의도를 띄고 주장,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보게 된 것이죠. 현대 사회의 발전으로 우리들의 삶이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상술과 미신과 거짓말로 뒤엉킨 유사과학’으로 인한 피곤함도 쌓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재밌고 탄탄한 내용과 구성으로된 과학 웹툰 만화가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겨울철 혈액 순환을 위해 자석 팔찌를 구입하는 대신에 <유사과학 탐구영역>을 읽으시면 더 건강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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