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머무름 없이 ‘여성’의 범주에 대한 질문을 해야만 한다. 계속해서 말이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이 있다. 자주 이 문장들을 보며, 생활 속에서 이 약속들을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1. 우리 모두는 여기의 주체이며, 나이,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혼인여부, 가족관계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다.
 2.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
 3. 평등문화를 훼손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공동으로 대처한다.
 4. 활동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경어를 사용하고, 상호 동의 없이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5. 나이,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에 관한 고정 관념이 담긴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6. 상대방이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은 하지 않는다.
 7. 외모와 관련된 발언을 주의한다.
 8.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지 않으며, 혐오 발언에 대해서 항의한다.
 9. 연애와 결혼은 필수가 아님을 유의한다.
 10. 평등문화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거부 의사가 있었을 시에 즉각 중단한다.
 11. 행사의 주관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경고하고 제지한다.
 12. 행사의 주관자는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도록 노력한다.」

 녹색당의 평등문화 약속문이다. 문장이 딱딱하기는 하지만, 사회생활에 필요한 필수 예절을 잘 요약했다. 다음은 한국여성의전화의 ‘평등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한국여성의전화 구성원들의 약속이다.

 「하나. 한국여성의전화의 구성원인 우리는 성평등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둘. 우리 중 누구도 성별, 나이, 가족 형태, 혼인 여부, 임신 및 출산,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신체조건, 장애, 병력, 출신 및 거주 지역, 학력, 경제적 상황, 사회적 지위,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구별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셋. 활동 연차, 역할, 직책, 친밀도, 상근 여부 등에 따른 자신의 권력을 인지하고, 누구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넷. 시간과 장소, 먹거리 등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활동 환경을 만든다.
 다섯. 신체 접촉, 성적인 말과 행동에 대한 허용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여러 조건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여섯. 나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배려한다.
 일곱. 내가 느낀 불편함에 주목하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여덟. 누군가의 불편함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잘 듣고 성찰하여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
 아홉. 구성원들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열. 모두를 위한, 누구나 존중받는,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구성원 모두는 꾸준히 평등의 조건을 만들어 나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약속들을 자기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이다. 한국여성의전화 부천지부(약칭 부천여성의전화)에서 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의심하던 3년 전 이맘때, 어느 새벽 과감하게 부천여성의전화 앞으로 활동가 지원 서류를 발송했다. 그래, 한번 페미니스트로 살아볼까, 그럴까, 그러자.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무엇이 페미니즘이고 어떤 이가 페미니스트인지 흐릿하던 시절에, 이 약속문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에 수많은 차이들이 존재한다. 이 차이들이 위계를 만들어내고, 심지어 일상의 차별과 폭력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복잡한 사회는 젠더와 맞물려 작동되는 은밀하고 유서 깊은 불평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여성인권단체에서 활동하니까 자연스럽게 평등이 실천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숱한 일상에서 그렇지 않은, 그럴 수 없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그것들이 부딪쳐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 단체는 꾸준히 평등한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있다.

 여성주의의 출발점은 생물학적인 기준이 아니다. 유서 깊은 불평등, 주류 젠더에 소외되어 버린 다양한 차이를 가진 존재들의 인권을 소환하는 곳에서 시작한다. 머무름 없이 ‘여성’의 범주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때론 겹치기도 하는 스물 두 개의 약속들을 수행하다보면 페미니즘에, 페미니스트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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