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가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또한 작가의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정년을 7년 남긴 상태에서 미련 없이 교단을 떠났다. 만류하는 지인들에게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지만, 나도 못 믿는 그런 고상한 핑계를 누가 믿으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많았다. 더는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가르치는 일이 재미가 없어서,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등등…. 모두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제 그만, 하고 싶은 일을 하자.’라는 내 안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사람 사귀는 일에 젬병일 뿐 아니라, 세상 물정에도 어두운 내가 혹시 무슨 사업에라도 뛰어들어 패가망신할까 봐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그냥 섬에 가서 글이나 쓸 거요.” 하고는 교문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도 사람들은 내가 어디 거문도나 흑산도 같은 섬에 들어가 창작 활동에 열심인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부천에 살고 있다. 왜 떠나지 않았냐고 질책성(?) 멘트를 날리는 지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엉터리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내가 말하는 섬은 다름 아닌 도시를 말하는 거랍니다. 왜냐구요? 도시는 고독한 영혼, 외로운 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요. ㅎㅎ!”

은퇴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사니 나름 대한민국에서 최고 행복한 사람 중 하나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여행기도 쓴다. 운이 좋은 건지, 작품이 훌륭한 건지,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크지만, 내 시는 춘의역, 상동역, 종합운동장역 등 7호선 전철 스크린도어와 버스정류장에 게시되어 있다. 작가로서 무지무지 큰 보람과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 혼자만 행복하면 무슨 재민가? 너와 나, 우리가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또한 작가의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콩나물신문이다.
 
콩나물신문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6년이 넘어간다. 스스로 B급 신문을 자처하며 우리 지역, 우리 동네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하는 신문,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로 조합원들이 글을 쓰고 편집하고 배달까지 하는 자급 자족형 신문, 그러면서도 망하지 않고 지난 6년을 꿋꿋하게 버텨온 전국 유일의 협동조합 신문이 바로 콩나물신문이다. 물론 저널리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많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척박한 환경에서 오로지 조합원들의 힘만으로 신문을 유지해 왔다는 것은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콩나물신문의 조합원이 되고 나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국적으로 수많은 협동조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시대에 신문 발행을 목적으로 탄생한 콩나물신문이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 2회 종이신문을 발행하며, 일일 방문객 5천에서 1만 명 수준의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에 비해 그 외연이 좀처럼 확장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콩나물신문도 이제는 소수 조합원만의 신문이 아닌, 80만 부천시민의 품을 파고드는, 진정한 시민의 신문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되었다. 때마침 우리 부천시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0 문화도시’에 선정되어 향후 5년간 국비 100억 원을 지원받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부천시는 ‘생활문화 도시 부천’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시민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고 이를 체계화하는 것을 목표로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시민이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 중심형 문화 운동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이다.

 

이제 콩나물신문이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물론 벌써 해야 했을 일이지만 그동안 소홀한 점이 없잖아 있었던 것들, 예를 들어 각종 전시회, 발표회, 토론회 등 개인이나 단체의 문화 활동을 온·오프라인 콩나물신문을 이용하여 홍보하고 지원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콩나물신문이 부천시민의 진정한 문화 교류 커뮤니티로 거듭난다면 그 또한 시민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2020년 콩나물신문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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