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미워요

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20대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빨리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아이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생각은 지켜진 지 오래다. 어쩌면 이 상상 속에서 결혼보다 아이가 더 중요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아니 몇 개월 전만 해도 나의 꿈은 이 나라에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바로 내가 태어난 이 한국에서 말이다.
 
 그런 나의 꿈이,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갖는 소박한 꿈이, 이 나라에서 내가 성공하고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사회로부터 얼마나 무참히 얼마나 잔인하게 짓이겨졌는지 아는가?

 

 몇 년 전부터 미투 운동으로 인해

점점 수면에 비춰진 남자들의 성폭행, 성추행들은 참 입에 담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우리나라 야동의 절반 이상은 불법으로 찍은 몰카이고 이를 몰래 올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몰카로 찍었다는 사실에 대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몰카의 피해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지우고 싶은 걸 청소해주는 업체에 비싼 돈을 들여 기록을 지우지만 이마저도 기록이 거의 사라져갈 즈음 악의적으로 유포하여 다시 돈을 뜯어내는 것이 다반사다.
 
 몰카로 인한 피해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몰카범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몰카로 인한 자살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죽어서도 그 동영상은 지워지지 않고 피해자가 죽었다는 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돈다. 왜 잡히지 않을까, 왜 줄어들지 않을까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나라에 높으신 분들이 그러고 노니까.
 
 이 글을 보고 남자들이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다. 왜 성범죄자를 남자로 이야기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물론 성범죄에는 여자도 있다. 그러나 성범죄자에서 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이것은 팩트이다. 그렇다면 낮은 비율이라도 포함이 되어있으니 동등한 입장으로 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등하게 써달라고? 어쨌든 둘 다 성범죄자니까? 그 말을 법정에서도 똑같이 했으면 좋겠다. 과연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여자와 남자가 똑같을 거라 생각하는가?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여자는 구속 남자는 항상 증거 불충분이고 술을 마셔서 이성이 없다고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장담하는데 이런 헛소리가 법정에서 통하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여자 성범죄자에게도 증거 불충분으로 잡아가지 말란 소리가 아니다. 여자도 잘못은 잘못이니 죄를 똑똑히 받아야 한다. 내 말은 그 죄를 남자도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소리다.
 
 구속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요즈음 우리 동네로 성범죄자가 이사 와서 주의하라는 우편이 자주 오는데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끔찍한 범죄에 비해 형량이나 벌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성폭행범 중에서도 10년이 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염색이나 성형을 하면 길 가다 나에게 길을 물어봐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전자발찌를 하지 않은 성범죄자는 학교 근처에도 올 수가 있다니…. 이 동네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 많은데도 말이다.
 
 심지어 내 친구는 13살 어린 나이에 SNS에 가입하자마자 수많은 아동 성애자들에게 끔찍한 연락을 받아야 했다. 남자아이들은 주변에서 그런 일들을 감지하지 못하고 살 것이다. 성교육 시간에 대충 틀어주는 비디오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청소년들이 바로 옆 짝꿍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은 성범죄로부터 보호받기 너무 힘든 구조에 있다.

사회적으로 성폭행한 여성을 감싸주지 않고 학교나 회사, 사회 이미지를 신경 쓰기 급급해 단체나 무리에서 피해자를 떨어뜨리기 바쁘다.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무식한 행동이야말로 학교나 회사, 사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수준 낮은 행동이란 것을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누구보다 느끼며 살기에 막상 성폭행을 당했을 때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한다. 정말  용기를 내어 신고해 봤자 증거 불충분과 너무 적은 형량, 사회로부터 받는 질타밖에 남지 않는다. 몰카범을 신고해도 대중들은 그 찍은 몰카가 어떤 것인지 찾기 바쁘고 "여자가 너무 야하게 입었네", "밤늦게 돌아다니질 말았어야지", "진짜 싫으면 더 거부했어야지" 같은 말로 2차 피해를 준다. 이게 한국의 수준이다. 이게 우리 사회에 검은 부분이다.
 
 성폭행을 저지르고 남자들이 법정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술 때문에 이성이 없었어요.", "고의로 그런 게 아니에요.", "여자도 싫다고 안 했어요." 술 때문에 이성을 잃었다고? 그래요, 술을 먹고 나온 그 모습이 당신의 본성이었겠죠. 당신이 평소 가슴 깊숙이 인지하지 못했던 쓰레기 같은 생각들 때문이었겠죠.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고요? 성폭행이 무슨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생긴 차 사고입니까? 여자가 싫다고 안 했다고요? 그 여자는 성폭행을 당하는 내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거부했을 겁니다.
 
 이젠 지나가는 아저씨 한 명도 의심이 든다.

혹시 성폭행범이 아닐까? 하며 지하철에 자리가 나도 옆에 남자가 앉아 있을 땐 편히 앉지 못한다. 특히 여름에는 말이다. 이런 사회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한다. 내가 의심하지 않고 일어난 범죄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이 존재해도 마음 놓지 못하는 게 시민을 지키는 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제, 나는 한국에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 모든 기대가 사그라들었다. 어제는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난 하루의 끝이었다. 자기 전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N번방에 대한 이야기였다. 몰랐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도.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이 일이 더욱 묻혔다고 말했다. 아니, 그건 핑계다. 사회에 알리지 않기 위한 정부의 꼼수다. 아마 실제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일이 코로나 때문에 잊혀진 일이라고? 코로나 때문에 잊힐 수 있는 일일 수 없다.
 
 주로 청소년을 상대로 한 단체 성폭행 사건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단체 성폭행이 코로나 때문에 묻힐 수는 없다. 아이들을 지킬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묻히지 말아야 할 일이다. 여자들의 신상 정보를 털고 SNS 커뮤니티로 협박을 했다. 내가 너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내가 시킨 짓을 하라는 식이었다. 협박하기 쉬운 상대를 찾다 보니 미성년자가 주 대상이 됐을 것이다. 정말 입에 담기 힘든 요구들을 했다. 커뮤니티에 방을 만들고 여자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고 남자들을 모아 돈을 받고 성을 파는 일이었다. 입장료는 최대 150만 원에서 평균 2~3만 원 정도다. 여자를 상품화시키는 쓰레기들이었다.
 
 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은 더 기가 막힌다. 커뮤니티에서 이런 행위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사이버경찰에게 신고하라며 성의 없이 넘기는 것을 보고 전화를 해도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돈이 되니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커뮤니티에 동참한 사람만 약 26만 명이다.

쥐똥만 한 나라에 남자 26만 명이 동참했다는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중 경찰이 없었을까? 법에 관련해서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겠느냔 말이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제주도 경찰만 한 명이다. 제주도에서 밝혀진 것만 한 명이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공식적으로 수사 범위에 들어간 사람은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 나라에서는 살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한국이 의료보험이나 기술이 좋은 것은 정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국의 좋은 점들을 놓지 못해 불합리한 것을 넘기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좋은 점을 붙들고 있기엔 오늘 하루가 너무 위태롭다. 매 순간을 의식하며 살 순 없지만 언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익숙해지는 곳에서 사는 것은 스스로를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상을 보고 밤새 잠을 설쳤다. 화가 났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울화통이 터졌다.

한국 남자랑은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을 일반화시키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26만 명이라는 숫자는 나를 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숫자였다. 그 사람들에겐 분명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있었을 것이고 여자 형제가 있었을 것이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딸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에 가담한다는 건 사회가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글이 어른들에게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 내 얘기 좀 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면 이번엔 화를 내고 싶다. 깊게 자리 잡은 안 좋은 문화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으로서 어른들에게 말이다. 국회에는 청소년을 지키기 위해 야동 접근에 관한 법을 만드는 자리에서 야한 사진을 보는 국회의원과 군대 내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휴가를 보내주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국회의원이 뽑혀있다. 여자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남자에게 성적 욕구를 풀어주기 위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사고를 가져야 저런 무식한 발언을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에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 이유로 학생다움을 이야기하면서 여자 교복에만 몸매 라인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했다. 장시간 입어야 하는 교복은 실용성도 없고 그저 예쁘게만 설계되어있다. 어른이 바라는 학생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겨울 셔츠는 살이 비치도록 얇다. 여학생들이 입기 위해 만들어진 바지도 뒷주머니를 빼고 엉덩이 라인이 드러나게 만들어졌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당당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고 끝없이 반성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없다. 안쓰럽다. 저 해맑은 아이들이 계속 해맑게 크기에는 세상이 너무 검고 더럽기에 한없이 미안하다. 막말하는 국회의원도 아이들을 보기 좋게만 통제하려는 학교도 바꿀 생각은 안 하면서 숨기기에 급급한 어른들도 다 필요 없다. 그동안 이런 사회에 동조해온 어른들이 댈 수 있는 핑계는 없어야 한다. 핑계를 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른답게 살며 아이들에게 대우받길 원해야 할 것이다. 어른답지 못하면서 나이를 들먹여 어른 대우를 받으려 하지 마라. 그렇게 받은 대우 중 아이들이 당신에게 진심으로 한 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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