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서머힐 사람들
서머힐 학교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잘 논다. 그도 그럴 것이 서머힐에 입학하면 다들 일년간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매일같이 밖으로 놀러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를 기획하는 놀이 위원회가 있고, 크고 작은 파티와 공연, 축제가 수시로 열린다. 그 중에 하나가 Gram이라고 불리는 댄스 파티다. 둘째날과 넷째날 밤, 서머힐의 그램에 우리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회의를 하는 장소였나 싶게 강당이 클럽 조명으로 바뀌고, DJ 부스에서 선곡한 노래들이 바닥을 쿵쿵 울렸다. 참가자들의 세대를 고려한건지 원래 플레이리스트가 고전인건지, 절로 몸이 움직여지는 노래들에 흥이 났다. 그램 경력자들답게 서머힐 학생들과 교사들은 능숙하게 춤과 음악을, 그리고 격이 없이 어우러짐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함께 노는 시간 만큼은 학생과 교사가 아니라 서머힐 가족으로 보였다. 우리도 남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흔들어댔다. 서머힐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서머힐의 교사들
서머힐 교사들은 스텝으로 불린다. 한국의 초등학교 연령의 아이들을 담당하는 담임교사가 있고, 영어, 음악, 역사, 과학, 미술, 목공, 영어를 담당하는 전담교사가 있다. 이 외에 교장과 교감, 기숙사 생활을 담당하는 하우스키퍼도 있다. 서머힐의 스텝들은 24시간 일한다. 늦은 밤이나 아침에도 아이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텝들도 학교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수공예, 보드, 음악, 요리 등 각자의 관심사로 학생들과 재미난 일을 벌이며 지낸다. 수업에 참여하고 싶은 소수의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교사로서 행운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휴가를 반납하고 이번 행사를 위해 하루 종일 애쓰는 것만 봐도 학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서머힐 학교를 탐방하면서 ‘정말 그런 학교가 가능해?’라는 처음 가진 의구심이 ‘우리도 이렇게 해보면 되겠구나.’하는 즐거운 상상으로 바뀌었다. 탐방기간 내내 많은 것들이 부러웠는데, 가장 부러웠던 건 오랜 역사를 통해 단단해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이었다. 꾸며내거나 포장하지 않고 사람들을 초대해 서머힐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이다. 당위적인 가치들이 넘쳐나는 한국의 대안학교에 가장 필요한 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기초적이고 단순한 원칙일지도 모른다.

 

자유와 민주주의
이번 탐방의 가장 큰 성과는 자유로운 교육이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한국 사회는 통제하는 교육에 익숙하다. 민주교육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들에서도 여전히 해야 하는 것, 혹은 옳은 것에 대해 열려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안학교에서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가치들이 오히려 학생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학생들은 옳고 그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는가? 아이들의 학습량이 충분하지 않을까봐, 아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할까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서머힐 학교에서는 자유로운 교육만이 아이들의 학습을, 아이들의 사회성과 책임감을 길러줄 수 있다고 믿고 이를 백년동안 실천해왔다. 서머힐에서 학생들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놀며 배우고 성장한다. 원하는 수업에 참여하거나 원하는 활동을 찾아서 하며 학습 욕구를 채워간다. 회의를 통해 나의 자유만큼이나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갈등이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익힌다. 서머힐에도 자유를 제약하는 300개가 넘는 규칙이 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바로 회의 안건의 당사자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른들의 권위로 제약되는 자유와는 다르다. 평등한 관계와 권위있는 회의로 가능한 서머힐의 민주주의다.

 

서머힐에서 얻은 것과 우리의 과제
물론 서머힐 학교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완전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서머힐에서도 괴롭힘과 놀림이 있고 학교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떠나기도 한다. 또한 서머힐 학교의 회의 방식, 다수결에 의해 벌칙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교육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건강하게 성장시킨다는 기본적인 믿음이다. 이번 탐방을 통해 서머힐 학교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이러한 믿음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도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서머힐 학교와 한국의 대안학교는 역사도, 문화도 달라 당장 학교를 서머힐 식으로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머힐 학교의 기본적인 철학에 함께 참가했던 산학교 교사들 또한 동의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 서머힐의 단순하지만 권위있게 이루어지는 회의, 서머힐 공동체를 지탱하는 위원회 구조,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 개별 학습,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업 공간, 댄스 파티 등 도입하고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부터 시도해간다면 점진적으로 산학교만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교육적 실천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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