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시가로 보는 현대인의 삶6

피리를 불어 달을 멈추게 했다는 신라의 고승 월명사. 그가 누이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뒤 쓴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슬픔의 종교적 승화(昇華)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현존하는 향가 중 가장 문학적 성취가 높다는 이 작품은 남매를 한 가지에 난 나뭇잎으로, 예기치 못할 운명을 어느 가을 이른 바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을바람에 순서 없이 떠나는 잎처럼 그렇게 홀연히 닥친 동생의 죽음. 그 슬픔을 내세에서 재회할 소망으로 극복하는 월명사의 목소리는 지금도 숭고하게 울린다.

생사의 길이 / 여기 있으매 두려워 /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느냐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 / 가는 곳 모르는구나 / 아으 미타찰에 만나볼 나 /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예기치 못한 전염병의 창궐로 죽음의 소식이 일상이 된 날들을 지나는 요즘. 문득 월명사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는 자신이 겪은 극심한 슬픔을 그가 믿는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근래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은 종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병을 치료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급속한 전염원이 되거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집회 자제에 대해 무심하게 대응하며 모임을 지속하는 비이성적 움직임들의 핵심에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종교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가치를 지향하지만 결국은 인간들이 향유하는 문화 현상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사회 발전을 위한 긍정적 역할을 지속해야만 존재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일련의 사회문화 현상이 그것이 속한 사회의 발전을 이루기보다는 심각하게 저해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는 법이다. 근래에 계속되는 특정 종교 집단의 비이성적 언행들이나 기본적인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교리와 전도 행태들은 종교 자체의 존립 이유에 대한 회의적인 물음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달을 멈추게 하는 초자연적 현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숭고함이나마 길러준다면 좋겠다. 그마저 실현하지 못하고 단지 자본과 권력의 축적과 확장에만 몰두하는 종교라면 그것은 이미 종교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기이한 변종의 문화 현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이 시련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측량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인간이란 예기치 못한 가을바람 앞에 맥없이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처럼 허약한 존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나약함마저 극복할 존재임을 믿게 하는 종교,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종교, 그것이 비이성적 종교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할 참된 종교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것을 배우고 숙성시키는 수행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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