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여성의전화 활동가 디디가 생각하는 아주 간단한 도식.
평등 = 민주주의 = 더불어 돌보기 = 이것이 페미니즘.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유엔 인권선언에는 “모든 인간은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진실이다. 이 진실은 사회 통치 권력에 의해 아무렇지도 않게 망각되고 무시되곤 한다.
 그럼에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이 더디고 힘들더라도, 진실을 짓밟고, 조롱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평등과 존엄성을 지키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문 19세의 여성이 있었다. 밤길 집근처, 여성은 남성의 폭행에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입안으로 들어온 무언가를 물어 저항했다. 성폭행 가해자의 혀 1.5㎝가 잘렸다.
 그런데 이 여성이 당한 성폭력 사건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묻혀 지고 여성은 남성의 혀를 절단한 가해자가 되어 구속되었다. 여성이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혀가 잘린 남성은 여성의 집에 흉기를 갖고 찾아와 가족들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부산지법 형사부 이근성 재판장은 여성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남성에게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협박한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하였고 여성에게는 중상해죄를 적용하였다.
 법원은 여성 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피해자의 경험을 의심하고 가해자의 권익을 우선적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여성에게 가해자한테 호감이 있던 것 아니냐, 가해자와 결혼하면 되지 않느냐, 왜 소리 지르지 않았느냐, 방어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느냐, 범죄 충동을 불러일으킨 도의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범죄의 잘못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있는 것이다.
범죄 피해의 순간에 당연한 대응은 자기방어이다. 성폭력 판결에 이성 감정이 웬 말이며, 성범죄 해결책에 결혼이 또 웬 말일까. 
 경찰은 여성의 증언대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으나 검찰은 여성이 검찰 조사 받으러 나온 첫날에 바로 구속을 하였다.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구속 이유조차 변호사 선임권, 진술 거부권 등의 여타의 고지도, 영장도 없이. 구속되는 그날에 엄청나게 비가 내렸다고 한다. 구속 수사 기간 내내 검찰은 여성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검찰은 왜 그랬을까. 여성 피해자의 정조보다 성폭력 가해자의 혀가 훨씬 중요한 권익이라 여겼다.
 
 법원은 법률이 보호하려고 하는 이익을 다룬다. 법원은 성폭력 피해를 정절의 관점으로 보았다. 피해여성의 보호 법익은 정조나 순결, 정절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권에서 바라봐야 한다. 여성은 생명,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권리를 유린당한 것이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정당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가 무시된 것이다.

 

 여성에게 검찰과 법원이 또 다른 가해자로 등장했다.
소리 지르지 않았고 고의적으로 혀를 자른 것은 엄벌에 처할 가해행위라고 했다. 성폭행을 당하는데 피해자가 얼마나 구조될 수 있을 만큼 소리 지를 수 있는가, 소리 지르면 반드시 구조되는가, 소리 지르는 피해자를 강압하기 위해 가해자는 피해자를 입을 틀어막고 목을 조르지 않던가.
 피해자에게 행실 책임을 묻고, 범죄 유발책임을 전가하는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사법부는 젠더 문제의식이 부재하다. 성적 차이가 편견과 차별로 자리 잡아 폭력으로 작동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인권 문제에 성인지 관점이 빠져 있곤 하다.

 성인지 관점은 양성평등, 성평등 패러다임으로 새롭게 대두된 생각이 결코 아니다. 헌법적, 지극히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내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서로를 보살피고 돌봐야 한다.
 56년 전의 이 사건이 사법계에서는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행 사건’, 여성 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사건으로 언급되고 있었다지만, 이 여성이 당한 성폭력 피해, 검경의 위법, 법원으로부터 받은 2차 가해,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며 살아온 고통과 상처, 깊은 트라우마, 억울함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진실을 세우려는 사람들
묻히고 가라앉을 뻔한 이 사건이 지금 물 위로 올라오고 있다. 물 위로 올라올수록 이 사건의 진실이 5월의 햇살을 받아 빛난다. 진실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6일. 아주 맑고 푸르던 날.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56년 후 이 여성 둘레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56년 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인권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70대가 된 이 여성이 ‘여성의 삶과 역사’에 대한 자기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경험을 공유한 여성 학우가 조력자가 되었다.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에 전화 상담을 하면서 두 사람은 이 사건은 명명백백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사건이라는 것을,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방안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재심신청 준비를 하였다. 법률지원단이 꾸려졌다. 형사소송법 제 420조 재심 청구 사유에는 ‘증언이나 증거가 허위임이 입증되는 등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성이 발견된 경우’가 있다. 법률지원단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불법 체포와 감금부터 위법성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정당방위 인정요소를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였으며, 불법을 양보할 수 없다는 정당방위 이념에 반한 판결임으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본다.

 법원은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침해는 여기서 끝내야 하고 국가는 성폭력 피해자의 회복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 여성이 이 여성의 경험을 공유하고 조력자가 되었듯, 이 여성의 경험을 나누고 돌봐야 한다. 말하기는 듣는 자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56년 만에 말하기는 정의로운 연대의 감성과 의지가 있는 시민들이 있기에 전개된다.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이 여성을 지지하자. 응원하자. 피해자의 말하기가 많은 여성 폭력 피해자들에게 힘이 된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된다. 사회 정의를 세운다.

 

 “56년 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를 촉구합니다.
* 국민청원 바로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dGvVbG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