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다섯, 백세시대라는 이 시대에서 반의반도 못 살아봤다. 어른들이 ‘앞길 창창하다.’ 말하는 나이에 나는 어쩌다 유서를 쓰게 되었나….

 1월에 갑자기 불어온 코로나를 별생각 없이 금방 지나칠 거라고 생각해서인가. 엄마에게 끌려가 학원에 가는 친구들을 막지 못해서인가. 이 시국에 벚꽃놀이 가겠다는 커플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못해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개학하겠다는 교육청 우두머리의 멱살을 잡지 못해서인가.
 
 오늘 당장 차에 치여도 딱히 미련없는 삶이라 하였지. 27일에 학교로 가라는 교육청 우두머리의 지시에 계획적인 죽임을 당해도 괜찮다는 게 아니었다.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 했지 죽여달란 말이 아니었단 말이다. 코로나로 자연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게 해피엔딩이겠구나’ 하는 생각은 하였지만, 같은 인간에게 대량죽음을 당해도 해피엔딩이란 생각은 안 했다. 버킷리스트에 70부터 꾸준히 유서를 쓰겠다는 말을 15살에 이뤄버리고 싶진 않았다.
 
 나는 비통하게도 내 재산을 어찌저찌해달란 말을 유서에 쓸 정도로 오래 살지도, 많이 벌지도 못했다. 쥐뿔 하나도 없단 말이다. 20살에 독립할거라 적금들던 나는 몰랐지. 15살에 유서 쓰고 있을 줄…. 작년에 북 콘서트 하며 또 할 거라 말하던 나는 몰랐다. 그게 내 마지막 책이 될 거란 걸 말이다. 약 14년 살면서 남긴 게 책 한 권인데 그 책 한 권이라도 있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 또 놀러 갈 수 있을 줄 알고 곰 젤리 통에 모아둔 내 돈은 써보지도 못하게 됐다. 적금은 아직 기간도 남았다. 아직 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네덜란드 여행기도 다 못 썼다. 이민은 무슨 중학교 졸업장도 못 받았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최고의 불효라던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내게 생겼다. 아직 못해본 게 세상천지 삐까린데 억울해서 어떡하냔 말이다. 가는데 순서 없단 말이 내 미래가 될 줄 몰랐다.
 
 진심인데 내 장례식장에 학교 관련된 사람이 애도한답시고 온다면 뜨거운 육개장을 던져버려라. 내 장례식장에 한 발짝도 들이지 마라. 너무 짜증 나서 관짝 열고 나올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애매하게 나아서 평생 후유증 안고 살게 된다면 내가 직접 다 죽이고 감방 갈란다. 설마 다 죽이기 전에 잡아가진 않겠지.
 
 여러분 저 27일에 죽으러 학교 갑니다. 애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않을 바에는 다 죽여버리겠다는 교육청 소름 끼치고요. 죽을 위기에서도 학원 보내는 학부모들 징글징글하네요. 지금 보내는 학원이 애들 미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학원 때문에 미래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죽으러 가는 김에 식칼이라도 들고 갈까요? 살인 충동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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