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 9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2020 문화도시’ 지정 기념 특집
콩나물 신문은 부천시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문화체육관광부 ‘2020 문화도시’ 지정을 기념하여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천 시민의 자긍심과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합창(合唱)>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9번(Symphony No.9 in d minor, Op.125)은,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기악곡’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역사상 최초로 솔리스트와 합창단을 등장시킨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사람의 목소리 또한 세상의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럿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는 합창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논어》 <자로> 편에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획일적이지 않다는 뜻인데 이는 ‘합창(合唱)’을 설명하기에도 적절한 말이 아닌가 한다. 합창은 모든 구성원이 저마다 탁월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절제와 배려를 통한 화합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각자의 음역을 지키면서 상대를 침범하지 않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문득 합창단원들이야말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군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 아홉 번째 주인공은 부천시립합창단 상임 단원이자, 작곡가 겸 연주가, 오페라 해설가, 시인 등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프라노 정재령이다.

▲ 소프라노 정재령.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는 물론 작사 작곡에까지 능한 멀티 예술가

사회사업가로 활동한 음악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다

  소프라노 정재령은 강원도 원주가 고향이다. 그녀의 아버지 고 정하춘 선생은 서울대학교 작곡과와 숭실대 사회사업과를 졸업하고 원주에서 교편을 잡으며 음악협회 회장, 예총 회장을 역임한 원주 음악계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원주 음악계의 기틀을 다졌을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 또 사회사업가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정재령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이 일상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고, 학교에 입학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작곡에도 재능이 있어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정세문 전국 동요 작곡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원주 청소년 시립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다. 변성기가 지나서는 성악을 공부하여 막상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바이올린, 피아노, 작곡, 성악 등 네 종류의 진로를 놓고 무엇으로 입시를 치러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결국, 연주자의 길도 좋지만, 가사가 있어서 작사자와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성악가의 길을 걷기로 하고 상명여대 음악과 성악전공에 입학했다. 바이올리니스트나 작곡가로 성장하길 원했던 아버지는 딸의 이런 결정을 반대하지 않고 존중해주었다.

  “1995년 부천시립합창단 오디션 공고를 보고 아버지 몰래 응시했어요. 그 당시 부천시립합창단은 오페라를 잘하는 합창단으로 유명했는데 그 때문인지 소프라노 4명을 뽑는데 3백 명이 넘게 지원자가 몰렸더라고요.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 집에 전화를 드렸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놀라시고 기특해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께서는 2002년에 돌아가셨는데 4주기 때 따르던 청년들이 시집을 출간해 주시고, 또 제자들과 지인이신 작곡과 교수님께서 아버지 시에 곡을 붙여 추모음악회를 열어주셨어요. 사회사업가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품으셨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저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죠.”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으로 출연해 열연을 펼치고 있는 부천시립합창단 소프라노 정재령

넘치는 재능, 소프라노 & 연주자 & 작곡가 & 시인

  성악가로 데뷔 후 지금껏 650회 이상의 음악회 무대에 선 소프라노 정재령은 오페라 <메리 위도우>에서 주연 한나 역을,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역을 맡았으며, 그 밖에도 리골레토, 토스카,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황진이,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등 다수 오페라에 출연해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오페라 해설사로도 나서 <정재령의 해설이 있는 오페라 산책> 프로그램을 100회 이상 진행했고, 각색 오페라 <헤이 피가로, 피가로>, 창작 뮤지컬 <옥희>의 대본을 집필하고 음악을 직접 선곡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19년에는 시집 《거룩한 비밀》(행복한집)을 출간하여 시인으로서의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으니 그녀의 예술적 재능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녀는 지금도 하루에 피아노 세 시간, 바이올린 세 시간을 꾸준히 연습하며, 틈틈이 시를 쓰고, 작곡을 한다. 그런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

▲ 오페라 <리골레토>에 체프리나 백작부인으로 출연한 부천시립합창단 소프라노 정재령.

  “아버지께서 생전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의 단독면담을 통해 원주 ‘치악의 종’ 건립비를 지원받으셨는데, 왜 하필 ‘종’을 세우려고 하셨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름답고 깊은 종소리에 예술의 감동을 담아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뜻이 아니셨나 싶습니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에 예술가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합창단 활동 외에도 힘닿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창작가곡 모임도 이끌고 싶고, 제9회 충무로 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서 접한 영화인들의 열정 또한 뜨거웠기에 부천 영화인들과의 만남도 성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저 바람일 뿐입니다만, 제가 대본을 쓴 뮤지컬 <옥희>도 공들여 쓴 만큼 부천시립합창단의 무대에도 올랐으면 합니다.”

▲ 찾아가는 음악회. 부천시립합창단은 시민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아무쪼록 그녀의 바람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그녀와, 그녀가 몸담고 있는 부천 시립합창단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부천시립합창단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국내 최정상 부천시립합창단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문화도시 부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부천시립합창단이 어느덧 창단 32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988년 창단 이후 신선하고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을 추구하는 합창단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부천시립합창단은 제3대 조익현 상임 지휘자와 50여 명 단원의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국내 최정상 합창단의 명성을 구가해오고 있다. 특히 오페라 합창에서 풍부한 볼륨과 강력한 표현력을 갖춰 <박쥐>, <마술피리>, <가면무도회>, <라보엠>, <사랑의 묘약> 등 다양한 공연에 초청되었으며, 러시아의 예르마코바, 미국의 윌리엄 데닝, 조셉 플루머펠트, 제리 멕코이, 독일의 마틴 베어만 등 세계 유명 합창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한 바 있다.

▲ 부천시립합창단. 올해로 창단 32년을 맞는 부천시립합창단은 신선하고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을 추구하는 합창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든 공연을 중단했던 부천시립합창단은 오는 6월 4일, 제143회 정기연주회 “왈츠 & 폴카”를 시작으로 2020년 일정을 시작한다. 2013년부터 계속해온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어린이 음악회>, <가족 오페라>, <청소년 음악회>, <모닝 콘서트> 등과 함께 <찾아가는 음악회>, <스쿨 클래식 콘서트>, <야외음악회>, <아트밸리 강사 파견> 등 부천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행사도 곧 재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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