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아이와 놀자 [105]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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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에 차가운 바람이 붑니다. 마른 나뭇잎이 나무에 매달려 흔들립니다.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 끝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바람의 강약에 맞춰 까딱까딱움직입니다. 숲길을 좌에서 우로 쏴아가로질러 건너가는 낙엽들이 바람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강한 바람이 잠잠해지고 숲에 고요가 찾아옵니다. 저 멀리 따다다다다우렁차게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딱따구리입니다. 뒤이어 왼쪽 작은 키의 나무덤불에서 지지배배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박새 두세 마리입니다. 여러 그림자가 뒤에서 앞으로 큰 나무 사이를 우르르 몰려가며 카카울어댑니다. 물까치 떼입니다. 머리 위 , . . ‘소리에 하늘을 보니 검은 실루엣이 보입니다. 큰부리까마귀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겨울 하늘에 두 개의 새까만 날개가 선명하게 펄럭입니다. 부러진 커다란 나무들 사이를 후다닥나무 위로 기어올라 이 나무 저 나무를 휙휙건너며 공중곡예를 합니다. 청설모입니다. 바위틈에서 물이 졸졸흘러나옵니다. 물은 얼음 밑으로 사라지면 얼음 위로 물길을 그리며 소리를 내는 것 같습니다. 퐁퐁퐁 퐁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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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겨울의 고요함이 작은 소리까지 더욱 청량하게 들려줍니다.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니 눈길이 쉽게 갑니다. 찻길에 자동차가 많으면 들리지 않을 소리들도 차가 없는 새벽에 고요가 깔리면 사람의 작은 기침소리도 쉽게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겨울 숲에 생명이 보입니다. 더 넓게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푸른 나뭇잎으로 가려져 있던 숲이 낙엽으로 다 떨어져 앙상합니다. 발 앞 2~3m 거리만 보이던 숲이 망원경만 있으면 200m 밖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방에 있으면 방 크기만큼 밖에 볼 수 없지만 외출해 밖에 나오면 멀리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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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에 냄새를 느낍니다. 깔끔하고 맑은 느낌입니다. 봄에는 수많은 꽃들의 향기로 따스한 느낌의 냄새가 나고 여름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성장하는 풋풋한 느낌의 냄새가 나고 가을에는 푸석푸석 말라가는 느낌의 냄새가 납니다. 겨울은 냄새가 없는 냄새가 납니다. 음료를 마실 때 음료 속의 물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물만 따로 마시면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의 어른들은 흙을 먹어보지 않아도 느낌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해보지 않아도 그 느낌을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아기 이래로 쌓아온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지각 경험 덕분이라는 것이죠. 일본의 세계적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그의 책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모든 감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두 함께 의미를 습득하여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세상을 핥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쌓아온 경험과 기억이 감각의 기초 배경을 만듭니다. 감각 경험이 부족하면 퇴화되고 미묘한 감정을 놓치게 됩니다. 감정을 놓치면 인간의 감각은 무뎌지게 되고 로봇과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잃게 됩니다. 앞으로 펼쳐질 AI와 인공지능의 자동화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강점은 감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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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감각을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만져보고 느껴보고 냄새 맡아보며 지속적으로 만나면 됩니다. 지속적 만남이 창조를 부추기는 자극이 되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는 점차 자연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자연의 중요성을 차차 인식하여 가까이 가져오려고 하지만 이미 멀어진 간극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매우 큽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자연과 도시의 간극을 메우려면 자연의 감각이 필요합니다. 도시의 기술과 자연의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에만 우리의 미래는 지속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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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외출이 두려우신가요?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가지시면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방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더 넓게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숲으로 가시면 더 많은 다양한 감각을 깨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가족 모두 즐거운 겨울 숲 여행이 되길 기원합니다.

 

| 정문기(부천방과후숲학교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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