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아이와 놀자 [108]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8살 아이가 숲에 왔습니다. 숲길을 가다 가방에서 간식을 꺼냅니다.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빵이 보입니다. 간식인가 봅니다. 봉지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뜯습니다. 빵이 부서지지 않고 온전하게 봉지에서 나옵니다. 천천히 빵을 들고 조금씩 조끔씩 먹습니다. 빵을 다 먹은 후 주변을 좌우로 둘러봅니다. 손에서 땅바닥으로 비닐이 떨어집니다. 아이는 비닐을 지나쳐 가던 길을 갑니다.

빵 봉지가 떨어진 길을 뒤따라가며 땅에서 봉지를 주워 담습니다. 옆에 있던 7살 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7살 아이는 주변의 쓰레기가 보이면 주워서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함께 쓰레기를 주워 담습니다. 잠시 후 다른 친구가 함께하고 또 다른 친구도 함께합니다. 어느 순간 빵 봉지를 버린 8살 아이도 함께 쓰레기를 주워 가져오고 있습니다. 금세 숲길이 깨끗해지고 아이들 표정도 밝아 마음도 편해진 것 같습니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앙상한 숲에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겨울을 나는 동안에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잘 보이지 않다가 봄이 되면 왠지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아이들 활동 범위가 길 밖으로 넓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봄을 맞아 등산 오신 분들이 길 밖으로 던진 쓰레기도 많습니다.

, 달걀, 바나나, 고구마 등등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 껍질들부터 물티슈, 화장지, 술병,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등 다양합니다. 버린 지 1년 미만의 쓰레기들은 낙엽의 어두운색과 대비되는 화려한 색깔입니다. 쓰레기가 한눈에 도드라져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농산물은 썩으니까 숲에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상식이 손쉽게 버리게 합니다. 농산물은 농약으로 재배되어 쉽게 썩지 않습니다. 도시숲처럼 많은 사람이 방문해 버리면 숲은 과부하로 자체 처리가 힘듭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어른들은 편리함으로 자신의 행동을 모른 척합니다. 쓰레기는 더럽다고 배웠고 경험했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최대한 가지고 다니기 싫습니다. 지식보다 편리가 우선입니다. 배운 지식은 편리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은 불편합니다. 지금 불편한 지식을 실천하면 공동체는 협력하게 되어 서로 이롭게 됩니다. 이익이 공유되고 순환되면 전체 이익이 커져 길게 보면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반대로 지금 당장의 편리함은 개인만을 유익하게 합니다. 이익이 개인화, 파편화되면 전체 이익은 작아져 길게 보면 공동체의 이익을 저하시켜 결국 개인에게도 불이익으로 돌아옵니다.

숲에 온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봅니다. 도시에 아이들도 어른들의 모습을 봅니다. 쓰레기를 대하는 모습에서 쓰레기에 대한 느낌을 만듭니다. 쓰레기에 대한 느낌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혐오스럽습니다. 아이들은 직접경험하지 않고 어른들의 느낌을 그대로 학습합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8살 아이가 방금 전에 맛있게 먹은 소중한 빵을 지켜준 비닐봉지가 사용을 다 하자 1초도 안 돼서 더럽고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쓰레기가 됩니다. 비닐봉지가 없었다면 빵을 쉽게 가져와 먹을 수 없었을 것인데 과거의 의미는 사라졌습니다. 사용 가치가 사라지면 쓸모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듯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현대 인간 사회는 사용 가치가 사라지면 존재 의미도 사라집니다.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언제나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 혹은 물건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용 가치가 존재 의미라면 사용 가치가 사라지면 존재 의미도 사라집니다. 사용 가치에 의해 존재가 사라지는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요?

자연에는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사용되며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나무의 쓰레기인 낙엽과 썩은 가지는 땅으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 땅속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땅속 생명의 쓰레기는 다시 나무를 먹여 살립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 사용되며 서로 존재의 의미가 됩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의 변화와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럽게 최선을 다해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생산하고 소비하라는 지식을 배우며 자연스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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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배운 지식은 편리합니다. 경험하며 배운 진짜 지식은 불편합니다. 느낌으로 불편하게 배운 지식은 스스로의 동기로 변화를 만들고 지혜가 됩니다. 길고 넓게 보면 삶에 이익이 됩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최진석은 사고 예방에 적극적인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했습니다. 자전거 헬멧 쓰기, 쓰레기 줄이기 등 작지만 불편한 지식을 실천하며 배웁니다. 지금 당장 불편한 작은 실천이 모여 세월호와 삼풍백화점 같은 참사를 예방합니다. 책임 없이 권리도 없다고 했습니다. 권리만 주장하다 보면 언젠가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진짜 공부는 불편합니다.

진짜 공부는 진짜 경험입니다

진짜 공부는 길고 넓어야 합니다.

진짜 공부는 생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짜 공부는 여유롭고 심심한 시간에 이뤄집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여유롭고 심심한 숲으로 진짜 공부하러 갑니다. 만지고 주우며 진짜 느끼고 경험하러 갑니다. 봄입니다. 숲에서 가시면 꽃도 느끼고 쓰레기도 느껴 보시면 좋겠네요.

 

| 정문기(부천방과후숲학교 대장)

 

* <부천방과후숲학교> 네이버 카페 운영자

* <도시 숲에서 아이 키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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