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의료봉사동아리 ‘찾아가는 청진기’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 동아리에서는 매월 의과대학 및 간호대학 학생들이 복지관 주변 아파트를 집집마다 방문합니다. 어르신들의 혈압 혈당 등을 재서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건강 관련 문진을 하며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지 봅니다. 건강 문제가 있는 어르신께는 해당 복지관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함께 지원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연결합니다.

의료봉사를 하며 많은 어르신을 뵈었고, 대동맥질환이나 녹내장 등 위험한 질환들을 미리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절되지 않는 당뇨나 고혈압을 찾아내고 병원에 가도록 안내한 적도 있습니다. 많은 어르신께서는 학생들의 방문을 반기셨습니다. 동아리에서 봉사 체계를 발전시켜 지속적 건강 관리가 필요하신 어르신 분들은 학생들이 매월 방문하면서 건강 상태 변화를 계속 보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봉사활동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봉사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 입니다. 즉,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활동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며 남에게 베푼다는 생각은 자칫 시혜적인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해준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상대는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며, 내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봉사활동은 숭고한 희생도, 자기만족을 위한 활동도 아닌 자신이 원해서 마음을 내어 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의료자원 활동이라는 말을 씁니다. 내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시간을 내서 하는 활동이라는 의미입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나 또한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에 봉사활동은 내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활동이 아니라 남과 나를 잇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우리는 온전히 독립적으로 살지 않고, 그렇게 살 수도 없습니다. 이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백 퍼센트 자립하지 않고 서로 기댄다는, 즉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먹을거리들을 키우고, 옷을 생산하고, 집을 짓는 등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많은 능력을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존은 거래라는 형태로 대가를 주고받으며 이루어집니다. 예외로는 가족이나 친구와의 의존이 있는데, 이는 서로와의 관계, 애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봉사활동은 이와 달리 서로 간 쌓인 관계가 없어도 대가 없는 도움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보통 상황에서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이 접하기에, 서로의 다른 세계들이 만납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며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좀 더 촘촘한 관계망을 만들어 갑니다. 거미줄처럼 엮인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며 서로를 돌봅니다.

사회적 관계는 건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와 건강은 유의한 상관관계를 나타냅니다. 특히 외로움은 신체 증상과 건강 상태에 악영향을, 사회적 지지는 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어르신의 경우 신체적이나 정신적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얘기하시기도 합니다.

학생들도, 봉사활동을 주기적으로 하며 배우고 얻어가는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르신들을 문진하는 선배를 통해 후배들이 질병에 대한 의학적인 접근을 배우기도 하고, 어르신들에게 어떤 의료적 필요가 있는지 피부에 와닿게 배우기도 합니다.

의료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건강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건강함이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이라고 세계보건기구는 정의합니다. 학생들이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한 의료인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봅니다. 경제적 보상을 떠나 자원해서 하는 활동인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서로가 의학과 건강이라는 키워드로 관계를 맺고, 병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사회 안에서 의료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됩니다.

글 ┃ 하정은(부천시민의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