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흰옷은 세상 까시랍다. 때가 잘 타는 성질머리도 그렇고, 커피 한 방울 떨어지면 난리가 나는 것도 고약스럽다. 더펄더펄한 내가 흰옷 입은 사람 옆에 있으면 조심스러운 것도 마찬가지다. 내 옷들은 거의가 검정색 아니면 회색, 무채색 계열이다. 이런 옷들은 때가 묻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아 편리하기도 하지만, 퉁퉁한 몸을 슬림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어 굳세게 입어왔다.

어느 날 서점에서 옷장을 열면 철학이 보여라는 책 제목을 보고 씩 웃었다. 철학은 개뿔! 눈 씻고 봐도 개성이라고는 없을 내 옷장에서 철학이 보인다고? 알록달록 옷을 입고 산책하는 앞집 푸들이 웃을 일이다.

한번은 옷장 정리를 하면서 잘 입지 않는 빨간색 점퍼와 하늘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빼냈다. 그것 하나 빼냈을 뿐인데, 금방 어두침침한 방이 돼 버린다. 색깔에 기운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더구나 빨간색은 돈을 부른다는데 괜히 빼냈다 싶어 빨강 점퍼는 그대로 걸어두었다. 지금도 내 옷장에는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옷들이 고상한 척 눈을 내리깔고 있다. 한때는 검은색 정장의 힘을 빌려 호기롭게 나서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옷을 이겨낼 기운이 없다. 노인들이 왜 날아갈 듯 화려한 색깔 옷을 좋아하게 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무슨 색깔을 좋아할까,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옷이든 물건이든 그때그때 좋아하는 색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흰색 옷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어렸을 적 하얀 원피스를 망쳤던 때문일까.

만날 헌 옷을 줄여 입히던 어머니가 자잘한 꽃무늬가 있는 하얀 원피스를 사주셨다. 하룻밤 사이 공주가 된 나는 그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나풀나풀 어머니를 따라 고모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정읍에서 장성으로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버스 길은 한참이나 길었다. 어지러워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짐을 가지고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어머니를 부를 겨를도 없이 토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달려와 원피스 앞자락에 묻은 토사물을 손으로 훑어내며 너는 양반 되기는 다 틀렸다!” 당장 원피스를 벗겨버릴 것처럼 무섭게 들렸다. 이때부터 하얀 옷은 뼛속까지 감당이 안 되는 옷이 되었는지 모른다.

흰색은 어른들의 색일까. 하얀 모시옷을 곱게 입으시던 외할머니가 계셨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면 흰 저고리, 흰 광목 앞치마를 두른 모습만 보인다. 옛날 같았으면 지금 내 나이는 증조할머니뻘인데, 지금까지도 흰옷 한 가지 걸치기가 무섭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사진 출처(픽사베이)

 

한겨울에 비가 봄비처럼 내리던 날, 췌장암으로 고생하던 여고 동창의 부음이 들렸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은 처음이라 내 죽음도 가까이 있다는 것에 섬뜩해졌다. 70대 중반에 있는 동창들이 모인 곳에서 탕! 죽음이 시작되는 총소리 같아 한참을 부음 소리에 멍해져 있었다.

안개 속 같은 하늘길로 사라진 친구는 영정사진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마주쳐주었다. 사람이 사라진다는 게 참 별거 아닌 것처럼 친구가 영정사진 속에 있는 게 낯설지 않는다. 중년이 된 외동딸이 입관을 마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엄마가 화장을 하고 하얀 수의를 입고 계시는데 참 예뻤어요.”

나는 하얀 원피스 하나 갖는 일이 급해졌다.

다음 날로 원피스를 자주 사 입던 단골 가게를 찾아 인사동으로 갔다. 코로나로 관광객이 끊긴 인사동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반값 세일을 써 붙인 옷 가게가 수두룩했다. 하얀 원피스에 목을 매고 인사동 가게를 다 뒤졌지만, 맘에 드는 옷은 쉽지 않았다. 쌈지길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다 마네킹에 입혀놓은 원피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소맷부리와 치맛단에 같은 천으로 두 가닥 프릴을 달아 요란스럽기는 했지만, 면으로 된 원피스면 되는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입어보며 어때?”하고 딸에게 물었다.

잘 어울리네!”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성공이다. 남들처럼 재산이 없어도 건강해서 살만했던가 보다. 엄벙덤벙 살면서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잘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얀 원피스를 옷장에 걸어놓고 내가 입고 있을 모습을 그려본다.

흰색이 사람에게 입혀졌을 때 상징되는 빛은 너무도 강렬하다. 결혼식에서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는 순결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발산한다. 장례미사를 드리는 신부님의 하얀 제의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최후의 퇴장이다. 내가 퇴장하는 날 하얀 원피스를 입고 누워있으면 못난 인생이 깨끗하게 덮어져 고와 보일까. 수의까지 챙겨가며 복잡하게 떠나기보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가볍게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떠난 사람 자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살아있는 자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살아왔던 인생을 후회한다고 얼마나 달라질까만, 완성되지 못한 원고를 마감시켜 놓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수정할 기력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언제,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친구는 죽고 나는 살아있다. 아직은.

 

김범송(수필가)

 

김범송 수필가
김범송 수필가

김범송 프로필

 

에세이스트 등단

저서 아내의 생일 꽃(2015)

정경문학상 수상

에세이스트 서울지회장 역임

부천수필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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