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지기가 읽은 만화책

도서: 비혼주의자 마리아  글/그림: 안정혜.  출판사: IVP
 

  불교는 자비로, 유교는 인으로, 그리고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각 종교의 지향점이자 가치를 집약해서 나타낼 수 있다.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깝지만) 종교마다 강조하는 바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 가치로 종교가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 간의 다툼 없이 각자 자신들의 종교가 가르치는 바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세상은 분명 평화로울 것이다.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다행인 점은 종교간 갈등이 그다지 많지도 크지도 않다는 점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다종교 사회에서 나름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설마 각 종교 내에 문제가 많아 이웃 종교에까지 참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지?

  광장지기는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개신교 신앙이다. 요즘 개신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참혹하다. 기독교 대신 ‘개독교’, 목사라는 말 대신 ‘먹사, 개목’이라고 불린다. 일부 교회와 목사의 문제라고 방어할 수도 없다. 너무나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비위 사실이 알려지면 “저 사람 분명 교회 다닌다.” 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진짜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밝혀지는 것이 부지기수다. 사실 교회라고 문제가 없겠는가? 목사라고 거룩하기만 하겠는가? 잘못이든 실수이든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허나 그것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하는 태도이다. 정직하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덮기에 급급하고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범죄가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인 목사나 장로들을 옹호한다. 게다가 용서를 구한다고 하면서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 활동을 재개하는 뻔뻔함에서 그들이 보인 참회의 눈물은 그저 악어의 눈물로 사람들과 하나님을 기만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성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은 성범죄에 있어서 정말 관대하다. 그런데 교회의 경우 관대함이 더하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가부장적인 남성우월주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식이 교회 안에서 더욱 심각하다. 특별히 목사라는 권위를 이용한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목사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조차 쉽지 않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범죄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자리하고 있다. 사회는 그나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이류인간으로 남아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사’가 될 수 없는 교단들이 여전히 많다. 여성은 남자를 돕는 자리에 있어야지 앞에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예수를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죄인과 약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셨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을 본다.

 

원래 개신교가 그런 종교인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성을, 소수자를 차별하셨는가? 성서를 통해 만나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안정혜 작가의 만화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차별하는 교회를 고발한다. 특별히 여성을 억압하고 수단화하는 지금의 교회를 고발한다. 뉴스로 보도되어 사회적으로도 잘 알려진 그루밍 성범죄를 소재로 교회의 민낯을 들춘다. 교회 다니는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다. 아니 불편해야 한다. 그래야 고칠 수 있고, 새롭게 할 수 있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교회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자. 특별히 목사들에게 선물하시고 이야기 좀 하자고 하자. 밑에 있는 성서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해야할지 논의해 보자고 하자. 더 이상 교회가 차별과 혐오의 독극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좋겠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업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3: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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